기후위기로 늦게 심고 늦게 거두기로…모판에서 무사히 싹 틔워 들판 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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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볍씨를 파종하는 모습. |
벚꽃이 지고 찔레꽃이 만발하니, 볍씨를 파종할 때가 왔다. 이번 달에는 마을에서 한 번, 공동체 농사에서 한 번, 총 두 번 볍씨 파종에 힘을 보탰다.
마을에서는 매일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먹는데, 여기서 먹는 쌀을 마련하기 위한 파종이다. 볍씨 파종기는 이웃에게 빌린 것으로, 손으로 돌리는 방식이다. 손잡이를 돌리면 벨트가 움직이며 먼저 볍씨가 떨어지고, 이어서 상토(모판 바닥에 까는 흙)가 쏟아진다. 계속 돌리다보니 이웃이 “아이고, 힘들어 죽겄네” 하고 넋두리를 내뱉는다.
상토가 너무 적게 덮이자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보다 못해 팔을 걷고 손수 상토를 뿌려주신다. “할머니, 허리 아프실 텐데 그만하세요” 해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판은 일일이 바닥에 깔고, 어느 정도 깔면 그 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그렇게 300판 정도를 만들었을까. 모판들을 한데 모아 바람이 들지 않도록 꽁꽁 싸맨다. 이웃이 집에서 오래 쓰지 않았던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며 “따시겠네” 하고 흐뭇해한다.
두 번째 파종은 벼농사 공동체와 함께 했다. 올해 심는 것은 자광도, 북흑조, 붉은차나락 토종벼다. 이곳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해 벼를 늦게 심고, 늦게 수확하기로 결정했다. 마을 파종 뒤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이 공동체는 주로 무경운농법을 한다. 일반적인 농사처럼 땅을 갈면 탄소가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대신 논에 물을 채우고 우렁이를 풀어 잡초를 없앤다. 또 ‘쌀 강화 시스템’(SRI) 농법을 도입했는데, 이는 한 구멍에 볍씨 1~3알만 심고, 물도 적게 주며, 모가 튼튼히 자라도록 간격을 넉넉히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일반 모판처럼 빽빽하게 심는 것이 아니라, 구멍마다 볍씨를 나눠 넣는다.
이번엔 곡성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려온 자동 볍씨 파종기를 사용했다. 전기로 작동되는 이 기계는 먼저 상토를 깔고, 그 위에 볍씨를 뿌린 뒤 다시 상토로 덮고 물까지 뿌리는 전자동 방식이다. 하지만 초반 조정이 중요하다. 조금만 잘못 맞춰도 상토를 버리고 새로 해야 한다.
그런데 아뿔싸, 볍씨의 싹이 너무 많이 나와 기계에 들어가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구멍을 키워봐도 해결이 안 된다. 결국 사람 손이 최고다 싶어, 정신없이 지나가는 모판에 손으로 볍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자동이 아니라 반자동 작업이 돼버렸다. 한 구멍에 한두 알만 넣어야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3~5알씩 들어간다. 빈 곳은 빈 대로, 많은 곳은 많은 대로 알아서 잘 자라겠지. 마치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정신없이 볍씨를 뿌렸다.
마지막으로 모판 위를 부직포로 몇 겹 덮었다. 볍씨들은 마치 뜨끈뜨끈한 찜질방 같은 곳에서 싹을 틔우며 푸르른 들판에 나가길 기다리고 있겠지. 그곳에서 만날 개구리, 우렁이, 메뚜기를 상상하며 이 뜨거운 시간을 견딜 것이다.
이렇게 올해 벼농사에 한 걸음 내디뎠다. 한 달 뒤면, 본격적인 모내기 시즌이다. 다른 일로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틈틈이 농사를 하게 된다. 올해도 별일 없이 한 해 농사가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 박기완 글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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