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코노미-21] 허름한 건물 안으로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야시시한 옷을 입고 손님을 호객하는 여인들의 손에 이끌리면서였습니다. 손님들의 손에는 동전이 한 가득. 안으로 들어서자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술과 고기, 도박 그리고 여자들. 모든 향락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튤립 알뿌리, 1길더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 한 남성이 일어나 소리칩니다. 모두의 눈이 남성의 손에 쏠렸습니다. 경매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1길더의 튤립 알뿌리는 삽시간에 치솟습니다. 최종 낙찰가는 1100길더. 경매에 성공한 남자는 돈 방석에 앉았습니다. 몸파는 여성들이 남자의 방 문을 쉼 없이 두들깁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여관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여관이 매춘과 튤립 거래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무역을 통해 엄청난 국력을 쌓고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취한 네덜란드는 ‘작은 대국’이었습니다. 상업·예술·금융 등 다방면에서 혁신이 터져 나오면서였습니다. 황금시대로 부를만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이내 취해버렸습니다. 승리와 자만이라는 독주가 원인이었습니다.
“튤립 알뿌리, 1길더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 한 남성이 일어나 소리칩니다. 모두의 눈이 남성의 손에 쏠렸습니다. 경매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1길더의 튤립 알뿌리는 삽시간에 치솟습니다. 최종 낙찰가는 1100길더. 경매에 성공한 남자는 돈 방석에 앉았습니다. 몸파는 여성들이 남자의 방 문을 쉼 없이 두들깁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여관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여관이 매춘과 튤립 거래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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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번 놀아볼까.”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의 ‘포주’. 1625년 작품. |
무역을 통해 엄청난 국력을 쌓고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취한 네덜란드는 ‘작은 대국’이었습니다. 상업·예술·금융 등 다방면에서 혁신이 터져 나오면서였습니다. 황금시대로 부를만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이내 취해버렸습니다. 승리와 자만이라는 독주가 원인이었습니다.
시민들은 더 쉽게 돈을 벌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 뜨겁게 주목받는 투자처가 있었습니다. ‘튤립’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널뛰면서 튤립 구근(알뿌리) 한 개에 집 한 채 가격을 뛰어넘었을 정도였습니다. 숙련직 근로자 연봉 10배도 가뿐히 넘었습니다.
경제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 ‘튤립 버블’. 튤립 가격의 고공행진이 영원할 것이란 믿음은 허망하게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물건을 사전에 정한 가격에 거래하는 ‘옵션’ 거래 시장이 이때 태동했기 때문입니다. 경제버블이 남긴 자국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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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얀 스틴의 ‘춤추는 커플’. 1663년 작품. |
꽃, 네덜란드를 수 놓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꽃이다.”16세기 네덜란드 의사 카롤루스 클루시우스. 의료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꽃’이었습니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큰 만족감을 느껴서였습니다. 마침 국가적으로 새로운 식물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때였지요. 동방 오스만 제국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귀한 꽃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국 네덜란드를 더욱 화사하게 만드는 진귀한 존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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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꽃을 보는 게 더 아름다운 일이지.” 카롤루스 클루시우스 초상화. |
의사 카롤루스는 본격적인 전업을 결심합니다. 라이덴 대학교에 들어가 식물원(Hortus botanicus)을 세웁니다. 세계 최초의 식물원이었습니다. 온종일 꽃과 식물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생장 방법을 살피는 일. 그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작업이었습니다.
지극한 식물 사랑을 알고 있던 지인이 그에게 꽃 한송이를 선물합니다. ‘튤립’이었습니다. 그는 보자마자 그 식물에 빠져들었습니다. 화려한 색을 뽐내면서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변 강대국의 숱한 박해를 뿌리치고 성장한 네덜란드와 같다고 그는 생각했지요.
빨간 튤립은 갈수록 그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선홍빛 색상에 다양한 줄무늬가 생기면서 네덜란드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이었죠. 바이러스에 걸리면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만 역설적으로 튤립의 미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카롤루스는 적었습니다. “튤립은 죽기 전에 다양한 색으로 주인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마치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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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불렝거의 튤립 그림. 1644년 작품. 가장 위 꽃이 셈퍼 아우구스투스. 가장 비싼 꽃이다. |
튤립에 빠진 네덜란드
튤립이 만든 찬란한 얼룩에 네덜란드인들은 모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집 앞 정원에 튤립을 심기를 원했지요. 좁은 국토에 너른 정원이 없었던 네덜란드에서, 투박한 농촌 풍경을 화사히 밝혀주는 튤립.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유럽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부국 중 부국이 네덜란드였습니다. 개신교 특유의 검약정신은 이미 희미해진 지 오래였지요. 그들은 탐욕스럽게 튤립의 알뿌리를 사들였습니다. 튤립 수요가 폭발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는 또 다른 수요를 부릅니다. 꽃에 ‘황제’, ‘총독’, ‘장군’이라는 등급까지 매겨줍니다. 아름다운 순서대로 줄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황제’ 튤립 한송이 가격은 1642년 기준 1200길더(당시 네덜란드 통화)에 달했는데, 이는 집 한 채 값과 같은 수준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꽃 한송이에 5억원이 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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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번 돈, 꽃한테 써야겠군.”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포주’. |
미의 상징이었던 튤립은 도박판의 장기말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계급이 높은 사람부터 시골 촌부까지 튤립 알뿌리를 안 사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튤립이 거래되는 여관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적였지요. 경매에서 큰 돈을 번 튤립 재배자들은 돈의 일부를 쾌락을 채우는 데 썼습니다. 여자, 술, 고기. 아무리 돈을 써대도 줄어든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알뿌리를 바라보면서 ‘황제’로 꽃 피우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습니다. 신께 기도드리는 지극 정성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이들은 몰랐습니다. ‘황제’와 ‘장군’을 가르는 건 바이러스라는 사실을요. 하나의 뿌리가 황제튤립이 될 수도, 평범한 튤립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바이러스가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도박의 신’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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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카탈로그에 명시된 ‘총독’ 계급 튤립. |
땅에 있는 튤립까지 거래되다
“땅에 있는 것이라도 파시오.” 튤립의 알뿌리를 찾는 사람들로 네덜란드가 시끌벅적 했습니다. 물건은 이미 동난 상황. 투기꾼들의 탐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겨울철 농사꾼들을 찾아갑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알뿌리를 거래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래 특정 시점, 특정 가격에 물건을 양도하기로 하는 ‘선물 거래’였습니다. ‘선물’이라는 거래방식이 생겨나면서 튤립 뿌리 가격은 더욱 치솟습니다. 미래에 나올 물건까지 시장에서 전부 소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실물이 거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기를 거래한다’는 뜻의 Windhandel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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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튤립에서 시작해 튤립에서 끝나는 법이지.” 디르크 반 바뷔렌 ‘포주’. |
25길더였던 튤립 알뿌리가 일주일만에 3000길더로 올랐습니다. 당시 숙련 근로자 10년치 봉급이었습니다. 13t의 밀, 황소 2마리, 돼지 4마리, 양 6마리, 포도주 드럼 한통, 맥주 한 큰통, 버터 5t, 치즈 1.5t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미친 튤립’이었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건 튤립 뿐이 아니었습니다. 투기 광풍에 휘말린 네덜란드 사회 전체였습니다.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도 튤립이 돈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건너와 투자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네덜란드 국토 전역에 튤립 거래소가 들어섭니다.
튤립은 네덜란드의 많은 것을 앗아갑니다. 손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교만은 네덜란드를 갉아먹고 있었지요. 노동의 윤리, 기업가의 창업 정신이 모두 바래지고 있던 아주 평온한 겨울 1637년 2월 3일. 튤립이 거래되던 시장은 썰렁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시끌벅적하던 여관도 고요합니다. 교회의 종소리만이 광장의 적막을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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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들이로구나...” 1637년 튤립 관련 팜플렛. |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다
그렇습니다. 시장이 붕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더 이상 천정부지로 치솟은 튤립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가에 내놓는 튤립 뿌리도 팔리지 않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네덜란드 수많은 투자자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습니다. 유명화가 얀 반 고옌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튤립 가격이 최고가를 찍던 때에 900길더에 자신의 그림 한점을 더해 튤립을 샀습니다. 그를 맞이한 건 비참한 가난과 죽음. 튤립 뿌리에 목이 졸린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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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나 팔고 살걸...” 네덜란드 화가 얀 반 고옌은 튤립 버블의 희생자였다. |
선물 계약의 약속날짜가 다가옵니다. 구매하기로 약속했던 이들의 선택은 두가지였습니다. 도주해버리거나, 계약대로 못한다고 몽니를 부리거나. 이미 폭락해버린 튤립을 거액에 주고 살 사람은 없어서였습니다.
정부도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물 계약을 한 이들이 대거 계약대로 이행할 경우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분명했습니다. 당시 튤립 거래 총액은 4000만 길더를 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암스테르담 은행 예치금 350만 길더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체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최초 투자금이 650만 길더였습니다. 튤립 버블이 터질 경우 초래할 경제적 부작용이 ‘미풍’이 아닌 ‘초강력 태풍’이 될 것이란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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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이라는 허상보다는 바닷일로 먹고 사는 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오.” 얀 반 고옌의 ‘폭풍우가 치는 바다 풍경.’ |
옵션의 태동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자본주의의 ‘헌법 1조’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때론 원칙에 눈을 감고 실리를 찾는 ‘선택의 예술’입니다. 선물 계약자들이 정부에 호소하자, 정부가 중재안을 제시합니다. 약속한 금액의 일부만 내고 튤립 뿌리를 양도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옵션 계약’의 초기 모습이었습니다.![]() |
“바보들은 자기들이 바보인 줄 모른다네.”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게리츠 포트가 그린 ‘바보들의 마차’. 1637년 작.품 튤립 버블을 풍자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
‘선물 계약’에서는 구매자가 특정 시점에 반드시 약속한 금액으로 물건을 사야 했습니다만, 옵션은 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줍니다. 엄청난 손해를 봐야하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조치였습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총 계약액의 10%를, 하를렘 등 일부 도시에서는 계약액의 3.5%를 위약금으로 정했습니다. 폭탄과 같은 투기 계약에 기폭선을 제거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원칙은 원칙’이라고 정부가 한 발 물러났다면 아마 네덜란드의 경제는 치명타를 맞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 금융시장에서 중요 개념으로 통하는 ‘옵션’이 튤립으로부터 탄생합니다.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세상 모든 경제 위기마다 400년 전의 튤립 버블이 다시 소환됩니다. 가면만 다를 뿐 탐욕이라는 본질은 언제나 같기 때문입니다.
거품이 꺼지자, 산업의 ‘양수’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여전히 튤립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버블 이후 잠깐의 튤립 혐오 정서가 퍼졌지만 오래가지 않았지요. 이들은 다시 튤립을 가꾸고 육성해 전 국토를 화사하게 수 놓았습니다. 네덜란드가 튤립 공화국이 된 배경이었습니다. 2015년 기준 화훼 수출액만 약 10조원에 달할 정도입니다. 전 세계 화훼시장의 약 60%를 차지하는 위대한 성과입니다. 튤립 광풍은 수 많은 사람을 가난과 몰락으로 몰아 넣었지만, 네덜란드를 아름답게 수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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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묘사한 튤립 버블. 귀족이 튤립을 바라보고 있고, 병사들은 튤립을 짓밟고 있다. 공급을 줄여 가격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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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튤립밭. [사진출처=La Taupe] |
<네줄요약>
ㅇ17세기 네덜란드에서 소개 된 튤립이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떠오르면서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ㅇ1길더의 알뿌리가 1100길더에 거래되는 등 숙련직 근로자 10년 연봉으로도 살 수 없는 수준이었다.
ㅇ수요가 빠르게 오르자 선점하려는 이들이 1년 후 양도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는데, ‘선물’거래의 시작이었다.
ㅇ가격 폭락으로 경제에 미칠 파급력이 우려되자 정치 지도자들이 10% 수준의 위약금만 지급하는 중재안을 제시해 사태를 해결했다.
<참고 문헌>
ㅇ마이크 대시,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 지호, 2002년.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역사(히스토리)와 경제(이코노미)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기자 구독을 눌러주세요.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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