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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꼼꼼하게’ 슬로·로우 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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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꼼꼼하게’ 슬로·로우 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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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가 아니어도 괜찮아
현실적 지속 가능의 삶 확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의 이상은 유지하되 실천의 강도를 낮춘 ‘로우 웨이스트(Low Waste)’와 하나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 오래도록 쓴다는 취지의 ‘슬로 웨이스트(Slow Waste)’가 그것들이다.

현실적인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로우 웨이스트’와 ‘슬로 웨이스트’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 하미마미(@hami.mommy) 제공

현실적인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로우 웨이스트’와 ‘슬로 웨이스트’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 하미마미(@hami.mommy) 제공


‘완벽’보다 ‘꾸준함’을 택한 사람들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김도연씨(23)는 어느 날 돌연 모든 활동을 멈췄다. “윤리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때마다 죄책감을 감당해야 하는 운동이라는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로우 웨이스트로 방향을 전환했다. 로우 웨이스트란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소비 방식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제로 웨이스트와 다르게 ‘느슨하게’에 방점이 찍힌다. 완벽함이 아닌 꾸준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온라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실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제시하는 콘텐츠가 활발히 공유되는 중이다. ‘과대 포장 없는 제품 목록’ ‘반찬통 챙겨나가 일회용품 줄이기’ ‘남은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요리법’ 등이 대표적이다.

김혜정 환경운동가는 “로우 웨이스트는 하지 못한 것에 주목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며 “모든 선택에 친환경적 가치를 담기란 쉽지 않지만 각자 생활 여건에 맞게 실천의 폭을 조절할 수 있어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로우웨이스트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것을 사 오래 쓰기’를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다.

로우웨이스트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것을 사 오래 쓰기’를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를 사더라도, ‘의미’ 있게

로우 웨이스트가 실천의 ‘강도’를 낮춘 개념이라면, 슬로 웨이스트는 ‘가치’를 중심으로 소비 방식을 바꾸는 흐름이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것을 사 오래 쓰기’를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원룸으로 이사하며 독립한 직장인 정윤지씨(26)는 1년간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고가의 그릇을 구매했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AS는 가능한지 등을 꼼꼼히 따져본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정씨는 “플라스틱이 없는 삶보다 의미 없는 소비가 줄어드는 삶이 진정한 지속 가능한 삶이라 생각한다”며 “필요한 것을 신중하게 고민해 사고 그것을 오래도록 잘 쓰는 것이 진짜 가치 있는 소비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패스트 패션’에 대한 피로감으로 슬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된 최라연씨(21) 역시 “대다수가 저렴한 물건을 합리적 소비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쉽게 망가져서 더 자주 바꾸게 되더라”며 “오래 쓸 수 있고 가치가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물리적·정신적 낭비를 줄이는 길”이라고 언급했다.

정유선 환경교육연구소장은 “다수가 함께할 수 있는 느슨한 실천이 오히려 더 큰 변화를 만든다. 환경 실천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될 때 사회적 동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사진 마이아일랜드(@myisland) 제공

정유선 환경교육연구소장은 “다수가 함께할 수 있는 느슨한 실천이 오히려 더 큰 변화를 만든다. 환경 실천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될 때 사회적 동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사진 마이아일랜드(@myisland) 제공


슬로 웨이스트는 소비 속도를 늦추는 데 그치지 않고, 유행에 휘둘리지 않으며 신중하게 소비하는 방안으로 물건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단발적인 실천이 아닌 지속 가능성을 생활 전반에 녹여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로우 웨이스트와도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로우 웨이스트와 슬로 웨이스트 흐름을 지속 가능한 친환경 실천의 ‘진화’로 본다. 정유선 환경교육연구소장은 “두 흐름 모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전제를 공유한다”며 “다수가 함께할 수 있는 느슨한 실천이 오히려 더 큰 변화를 만든다. 환경 실천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될 때 사회적 동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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