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레는 5·18 민주화운동 45주년 되는 날입니다.
5·18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바로 1986년 인천에서 있었던 5·3 민주항쟁인데요, 40년 만에 기념일 지정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됩니다.
모레는 5·18 민주화운동 45주년 되는 날입니다.
5·18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바로 1986년 인천에서 있었던 5·3 민주항쟁인데요, 40년 만에 기념일 지정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됩니다.
조유송 기자입니다.
【기자】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기자】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탄으로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목이 터져라 나온 뜨거운 함성은 멈출 줄 모릅니다.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경찰과의 충돌 끝에 129명이 구속됐고, 인천 5·3항쟁은 1980년대 최대 규모 민주화 시위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습니다.
[이재영 / 5·3 당시 인천대 학생회장: 5·18 희생자에 대한 부채감이라고 할까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부채의식 그리고 반드시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지만 항쟁의 의미는 오랜 시간 공론장에서 외면 받았습니다.
【스탠딩】
5·3항쟁이 시작된 시민회관입니다. 당시 거센 외침이 울려 퍼졌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렵습니다.
재작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으로 5·3항쟁은 민주화운동으로 법적 인정을 받았습니다.
인천시는 내년 40주년을 앞두고 5·3항쟁을 '인천시 기념일'로 지정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도 함께 진행합니다.
시민회관 앞 광장은 '5·3민주공원'으로, 근처 도로는 '5·3민주로'로 명명하기 위한 시민 청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은주 /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사무처장: 폭력성만 부각된 측면들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 인천 5·3민주 항쟁이 광주 항쟁 이후에 최대의 시위였고 그런 의미들이….]
인천 5·3 항쟁이 민주화 흐름 기폭제였던 만큼, 이제는 국가 차원 재조명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OBS뉴스 조유송입니다.
<영상취재: 김영길 / 영상편집: 정재한>
[조유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