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장난감’ 발언에 화가 난 누리꾼들은 소셜미디어에 장난감을 훔쳤다는 녹색 괴물 그린치 사진을 트럼프 대통령과 합성에 올리고, 메르세데스 벤츠 어린이용 자동차 장난감을 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사진을 공유하며 조롱했다. SNS 갈무리. |
“내 말은 꼬마 숙녀들에게 인형이 37개나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속을 긁어 놓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난감’ 발언이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45% 고율 관세 여파로 오는 크리스마스 때 장난감 공급 부족 우려가 제기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각) 자신의 골프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에서 워싱턴 디시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인형) 두세 개, 또는 네다섯 개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전에도 인터뷰에서, 내각회의에서 비슷한 말을 여러번 했다. “(아이들이) 인형 30개를 가질 필요가 없고 세 개만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NBC 인터뷰) “아이들이 인형 30개 대신 인형 두 개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인형은 평소보다 몇 달러 더 비쌀 수도 있다.”(내각회의)
중동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카타르 도하 국빈 만찬 뒤 자신이 사인한 축구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지아니 인판티노 피파(FIFA) 회장(왼쪽)과 카타르의 에미르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오른쪽)가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
서민·중산층들이 피부로 겪게 될 장난감 가격 인상 문제를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한 트럼프의 발언은 거센 역풍을 불렀다. 인형 수십개를 갖는다고 전제한 트럼프의 발언이 인형 하나도 사주기 버거운 사람들에겐 딴세상 얘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선 호화로운 방 안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어린이용 자동차 장난감을 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사진이 공유됐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 같은 억만장자들은 아이들 선물이나 생필품을 장만해야 하는 노동 계층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며 “이건 오만함과 무지가 결합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내 주요 전략가인 칼 로브마저 폭스뉴스를 통해 “마치 크리스마스를 망치는 ‘스크루지 영감’ 같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복적인 ‘인형’ 언급은, 역설적으로 미국 내 장난감 산업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컸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완구협회에 따르면, 미국 판매 장난감의 77%는 중국에서 수입된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이나, 젠가 등 보드게임과 플레이도 반죽 등으로 알려진 ‘해즈브로’ 등 미국 장난감 회사들이 많지만, 대부분 주문자제조생산(OEM) 방식으로 중국을 비롯한 국외에서 제품을 들여온다. 145%의 관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장난감 회사들의 비명이 잇따랐다.
관세 전쟁 중 미국이 중국과 ‘90일 휴전’을 타결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 장난감 업계는 이 기간에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고 외신이 전했다. 가격도 올리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유아용 장난감으로 유명한 ‘리틀타익스’ 브랜드, 인형 ‘브라츠’ 브랜드 등을 보유한 세계 최대 장난감회사 엠지에이(MGA)엔터테인먼트는 2025년 가을까지 생산의 40%를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여전히 중국에서 들여오게 돼, 제품 도매가를 인상할 계획”이라고 아이작 라리안 최고경영자는 13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텔도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히는 한편, 2025년 말까지 중국 공장 4곳 중 3곳을 폐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이른바 ‘국민 문짝’으로 불리는 러닝홈 장난감으로 유명한 ‘피셔프라이스’ 브랜드가 마텔의 것이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 시장에 대부분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 중 하나인 ‘브이텍’도 중국 철수 계획을 밝혔다. 앨런 웡 최고경영자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수출 전 제품의 생산 기지를 말레이시아, 멕시코, 독일 공장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앨런 웡은 “관세는 미국 수출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가격 인상 폭은 관세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설정되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브이텍은 한국에서는 ‘걸음마 보조기’ ‘아기체육관’ 등 유아용 교육 완구로 유명하다.
브이텍 갈무리 |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