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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대선의 불청객일까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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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대선의 불청객일까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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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주노조 등 조합원들이 지난 4월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5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위험의 이주화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주노조 등 조합원들이 지난 4월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5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위험의 이주화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김동수 | 르포작가·‘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지난겨울 비상계엄을 겪은 이후부터다. 어떤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전공의 복귀와 처단’을 담은 포고령 5항을 떠올린다. 인력난을 해소하려고 인력을 강제 배치한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20년 넘게 시행 중인 한 법률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 법률은 고용허가제와 관련된 외국인고용법 25조다. 쉽게 말해 비전문취업 비자(E-9) 등으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고용주가 먼저 근로계약을 해제해주지 않는 한, 퇴사를 맘대로 할 수 없게 해놓았다. 이들은 이른바 ‘추노’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추노’란 단어는 본래 ‘도망 노비를 찾아오는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노동자 사이에선 ‘노동자가 사용자로부터 도망치는 일’쯤으로 해석되는 은어로 쓰인다. 뜻은 뒤바뀌었지만 여기서 핵심은 결국 노동자를, 주인의 소유물로 보던 왕정시대의 노비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1894년 신분제 폐지 이후 명목상 노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추노’를 입에 올려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 일터에 엄연히 존재한다.



28살 네팔 청년 툴시 푼 마가르가 일한 축산업체의 돼지농장도 충분히 ‘추노’를 결심하게 할 만한 일터였다. 한겨레21 보도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사장과 관리자에게 모욕과 폭행 등 강도 높은 괴롭힘을 당했고, 일은 한달에 한번 정도 쉬었으며, 밤늦게까지 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고용노동부에 진술했다. 툴시와 동료들은 체류자격 탓에 농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들이 허가 없이 사업장을 변경하거나 이탈할 경우 비자 말소로 수배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잡히면 강제 추방된다. 추노가 두려워 ‘추노’할 수 없었던 툴시는 지난 2월 자살로 내몰렸다. 현행 고용허가제가 툴시가 겪었던 각종 불법행위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용주의 불법을 입증해야 사업장을 예외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현행 제도와 관행은 툴시와 동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장벽이었다.



지난해 11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 결과를 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1225개 중소 제조업체의 82.2%는 ‘내국인 근로자를 고용하지 못하는 사유’로 ‘열악한 작업환경, 임금·복지 수준’을 꼽았다. 결국 고용주는 이런 극한 환경의 일터에서 이주노동자의 ‘퇴사’를 원천봉쇄하는 비자를 무기로 인력난을 피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고용주는 앞으로 노동자를 위해 구태여 돈을 쓰려 할까. 인건비 절감에 더더욱 박차를 가해도 이상할 게 없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이슈를 고용주 시선에서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장님들의 인터뷰 내용은 급여만 인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태업’하는 이주노동자 탓에 사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해당 보도에서 이주노동자의 반론은 실리지 않았기에 지워진 부분이 있다. 사실 그들의 태업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일반적인 쟁의 행위가 아닐 수 있다. 이들은 해고를 당하지 않고는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일터에서 더 나은 곳으로 손수 이직할 방법이 없다. 해고되어야 한다. 해고당하려고 하는 쟁의 행위는 형용모순이므로, 이런 처지를 만드는 법률이 정상적인 것일 수는 없다.



전공의 관련 포고령 5항처럼 태생부터 뒤틀린 고용허가제의 시행 이후, 대선과 총선이 여러차례 치러졌고, 이주노동자의 죽음과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선거 기간에 이 제도의 개선을 고민하고 공약하는 주요 정당과 후보들은 늘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득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지난해 5월 기준 비전문취업 비자로 체류 중인 인구는 30만여명으로 적지 않다.(지난 대선에서 24만여표 차이로 승패가 갈린 것을 떠올리면, 결코 무시하기 어려운 숫자다.) 하지만 ‘선거권이 있는’ 고용주와 ‘선거권이 없는’ 노동자의 구도 때문일까.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이번 대선도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를 빼곤 고용허가제 문제는 관심 밖에 놓인 채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 제도의 문제로 툴시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고, 착취당하는 현실은 그대로 있다. 선거는 단순히 표 계산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 같은 논리로 ‘퇴사할 자유’를 원천적으로 빼앗는 걸 정당화할 수는 없다.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대선에서 불청객이 되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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