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오른쪽)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대한민국교원조합 대선 정책제안서 전달식에서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지명자(오른쪽 둘째) 등과 앉아있다. 공동취재사진 |
황준범 l 논설위원
윤석열은 오늘도 열심히 이재명을 돕고 있다. 12·3 비상계엄 실패 직후 석고대죄하고 진작에 국민의힘 당적을 버렸어야 할 사람이 여태 퇴거불응하며 대선을 목전에 둔 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은 “이재명 독재가 온다”고 목놓아 외치지만, 이 당을 향한 국민 시선은 몆주째 ‘윤석열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 ‘국민의힘 후보가 대체 누구냐’, ‘윤석열 출당이냐, 자진 탈당이냐’에 고정돼 있다.
국민의힘 대선 선거운동 현장에선 한숨이 쏟아지고 있다. 윤석열의 계엄 자폭과 탄핵으로 애초 기울어진 선거판인데다, 내부에서 대선 후보 교체 쿠데타가 벌어졌다가 당원들이 투표로 가까스로 저지하는 초유의 난장판까지 벌어졌다. 한덕수도 김문수도 다 후보감으로 못마땅하던 차에, 당 지도부는 무도한 시도로 당원들에게 자괴감까지 안겼다. 지지층은 싸늘하다. 국민의힘의 한 비영남권 의원은 “아는 사람 10명 중 5명은 ‘투표 안 한다’고 하고, 3명은 ‘이준석 찍겠다’고 하고, 2명 정도만 ‘그래도 국민의힘 찍어야지’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이 계엄·탄핵에 대한 입장, 윤석열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터라, “유권자들에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게 국민의힘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김문수 후보에 대해서도 흔쾌한 분위기가 못 된다. 김 후보는 애초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보기에도 자유통일당 전력 등 극우적 색깔 때문에 중도 확장성이 없고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인데다, 그가 ‘한덕수와 단일화하겠다’며 경선 표를 얻어놓고 약속을 어긴 점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윤석열·극우 색채 강한 이들을 끌어들여 선거대책위원회를 ‘윤석열 캠프 시즌2’처럼 꾸린 데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 윤석열 정부 내내 해온 ‘이재명 때리기’는 오히려 이재명을 단련시켰을 뿐, 유권자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게 국민의힘 사람들의 얘기다.
여론조사 흐름상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금의 여론 지형은 윤석열의 폭주와 이재명의 대항이라는 지난 3년의 세월에다, 결정적으로 윤석열 내란과 국민의힘 퇴행이 더해지면서 형성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김건희 그늘에 머물며 그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명색이 집권여당인데 지난 3년 중 절반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비대위원장 주호영, 정진석, 한동훈, 황우여, 권영세, 김용태)로 연명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의힘의 무능을 말해준다. 국회 107석 국민의힘은 국민의 대표가 아닌 영남·강남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했고, 당대표 찍어내기에 이어 대통령 후보 찍어내기까지 시도하며 민주정당이라 볼 수 없는 행태를 벌여왔다. 내란을 옹호하며 극우 세력과의 경계도 희미해졌다. ‘정권 교체’와 ‘내란 종식’이라는 당위가 ‘이재명 포비아’를 압도하는 대선 구도가 짜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세 후보 모두 공식 선거운동 초반 영남 지역에 총력을 쏟은 점은 보수의 심장부마저 흔들린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 때 대구·경북에서 22.76%를 얻었던 이재명이 이번에는 30%를 노리고 있다.
이러하니, 국민의힘이 외치는 “정권 재창출”은 허황하다. 국민의힘이 지금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이재명 집권 저지’가 아니라 ‘건강한 보수 야당이 되어 이재명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겠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국민의힘은 대선을 당 쇄신의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오는 18일 대선 후보 첫 티브이 토론을 앞두고서야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께 정중하게 탈당을 권고드리겠다”고 첫걸음을 뗐다. 심지어 김문수 후보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윤석열을 파면한 데 대해 “만장일치를 계속하는 건 김정은이나 시진핑 같은 공산국가에서 많다.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헌법·법률 파괴자인데도 ‘만장일치 탄핵’은 안 된다는, 심각한 반민주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탄핵의 강’ 건너기가 참으로 어렵다.
윤석열의 실체를 잘 알면서도 그를 정치로 불러들여 대통령으로 만들고 곁에서 권력을 누린 이들 또한 깊이 참회하고 뒤로 물러서야 한다. 극우 세력과도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지금처럼 윤석열·내란·극우 냄새를 풍기며 선거를 치러 ‘어정쩡한 패배’를 한다면, 국민의힘은 또 그 관성에 기대어 제1야당으로 존속할 것이다. 국민의힘에 아직 최악이 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처절한 쇄신’을 못 한다면 ‘처절한 패배’를 받아안고서야 주변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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