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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은데 읽을 수 없어 사서를 꿈꿨고… 교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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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은데 읽을 수 없어 사서를 꿈꿨고… 교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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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스승의 날]
시각장애인 사서 교사 황신애 선생님
책에 대한 결핍이 사서 향한 열망으로
도서관 리모델링해 학생 참여 이끌어
"기기·인력 교육 당국 지원 강화해야"


사서 교사 황신애씨가 13일 서울 구로구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점자정보단말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사서 교사 황신애씨가 13일 서울 구로구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점자정보단말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황신애(40)씨는 한쪽 눈에 아예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른 눈의 시력은 0.03. 사물 윤곽만 흐릿하게 파악할 수 있다. 글자는커녕 사람 얼굴도 인식하기 힘든 그의 일터는 글자와 종이가 빽빽한 도서관, 그것도 학교 도서관이다. 13일 서울 구로구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4년 차 사서 교사 황씨를 만났다.

황씨는 국내 최초 중증 시각장애 사서 교사다. 지금도 중증 장애 사서 교사는 황씨 포함 2명뿐이다. 그러나 그는 '최초의 장애 교사'로 기억되는 걸 거부했다. "최초의 장애인 변호사, 최초의 장애인 교사 같은 호칭이 회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직업을 갖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이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전문가로 성장하는 사회를 위해 저도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 못 보는 사서... '할 수 있는 일 집중'



황신애씨가 서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황신애씨가 서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글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사서가 됐을까. '책을 읽기 힘든 결핍'이 원동력이 됐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책이 점자, 음성 등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는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조금이라도 책과 가까워지기 위해 문헌정보학과를 전공으로 택했죠." 대학 졸업 후 2012년부터 9년간 서울시 소속 사서직 공무원으로 일했고 이후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며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임용고시를 거쳐 사서 교사가 됐다.

공부는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참고서가 없어 대체 자료 제작에 3개월이 걸렸다. 전공서는 2년 전부터 제작을 맡겼다. 황씨는 "안 되는 이유보다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버텼다"고 회상했다.

사서 교사가 된 뒤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명히 구분했다. 그는 책을 정리하고 분류하지 못한다. 대출과 반납 업무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도서 관리는 사서 업무의 일부다. 구입할 책 목록 선별, 교과 선생님들과 도서관 협력 수업 진행, 인문사회 아카데미와 같은 프로그램 기획 등 황씨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았다. 그는 "외국에서도 책 정리는 보조 인력이 맡고 사서는 기획과 교육을 담당한다"며 "내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둘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황씨가 지난해 도서관 리모델링을 위한 교육청 예산을 확보해 공간을 탈바꿈한 뒤 학생 이용률이 90% 이상 늘었다. 그는 "점심시간이면 학생들로 도서관이 꽉 찬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편견 없는 학생들에게서 미래 보여"



황신애씨가 도서관 책상을 점검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황신애씨가 도서관 책상을 점검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황씨는 교육 당국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시각장애인 교원은 문서를 점자로 변환하는 점자정보단말기나 화면을 낭독해 주는 스크린리더기 등 보조공학기기를 필요로 한다. 문서를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올리거나 수업 자료 오자 검수 등을 돕는 지원 인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보조기기의 경우 시각장애인 교원의 자비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인력 지원 예산도 2023년 교사 한 명당 2,700만 원에서 지난해 2,650만 원, 올해 2,000만 원으로 줄고 있다. 장애인교원노조에 따르면 서울교육청은 최근 '2026년도는 지금 수준의 예산 유지도 미지수'라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황씨는 "서울시청에서 일할 땐 장애인 공무원 지원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어 기기 값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며 "지금은 600만 원 넘는 기기를 교사가 구매하고, 방학 중 인건비 지원이 끊겨 사비로 인력을 고용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사서 교사를 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책과 도서관, 학생들을 사랑하는 그에겐 천직이다. 특히 편견 없는 학생들에게서 황씨는 '미래'를 본다. "얼굴을 바짝 붙이고 모니터를 보는 저에게 한 친구가 '선생님! 그럼 눈 나빠져요'라고 하더군요. '선생님은 시각장애가 있어'라고 하니 '그렇구나'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어요."

그는 "장애인 교사를 경험한 학생들은 장애를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인다"며 "이들이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장애인 교원 지원은 교원뿐 아니라 학생도 함께 성장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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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