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맨 앞)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이세영 | 정치부장
10일 자정에 시작된 ‘대통령 후보 김문수 축출 작전’은 23시간17분 만에 좌초했다. 후보 교체를 정당화하려고 급조한 당원투표가 교체의 부당함을 성토하는 항의투표로 전환된 결과였다.
언론이 최후의 승자로 꼽은 것은 후보 지위를 회복한 김문수도, 당권파에 회심의 카운터펀치를 날린 비윤석열계도 아닌 ‘당원’이었다. 한 신문은 “무너져 가던 보수정당의 정당민주주의를 당원이 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당이 몇년 새 밟아온 경로를 복기해 보면 5월10일의 이 사건은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김문수의 후보직 복귀 일성처럼 “놀라운 기적”이 일상화한 정당이다. 2021년 6월 서른여섯살 원외 정치인 이준석을 대표로 뽑은 게 이 당의 당원들이다. 제 당 출신 대통령을 둘씩이나 감옥에 보낸 윤석열을 데려와 대통령 후보로 만든 건 그로부터 불과 147일 뒤였다.
역설적인 건 12·3 내란 뒤 빠르게 우경화한 이 당을 견고하게 지탱하는 것 역시 당원이란 사실이다. 의원들을 움직여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반대표를 던지게 하고, 대통령의 농성전을 응원하러 새벽 공기 마시며 한남동 관저 앞에 몰려가게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 5·3 전당대회에서 탄핵에 찬성했던 한동훈 대신 내란을 두둔하고 탄핵에 반대했던 김문수를 대통령 후보로 뽑은 것은 또 누군가. 그 당원들이 일주일 만에 친윤 당권파의 후보 교체 막장극을 강제로 종영시켜버렸다.
현기증 나는 반전 드라마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진실은 이들의 절반 이상이 비상계엄을 두둔하고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시사인·한국리서치 공동조사를 보면, ‘현재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이들 가운데 ‘계엄 옹호·탄핵 반대’ 그룹이 54%로 절반이 넘었다. 지난해 12월10일 국민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선 국민의힘 지지자의 63%가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행위가 아니다’라고 답했다(두 조사 모두 당원이 아닌 지지층 상대 조사지만,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당원 여론과 지지층 여론은 대체로 일치했다).
국민의힘 당원의 극우화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로 심화됐는지는 비교 가능한 시계열 자료가 없어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적잖은 전문가가 동의하는 부분은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황교안 체제의 등장이 변곡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체제는 문재인 집권 중반기, ‘보수 몰락’이라는 위기의식 속에 주변부에 머물던 극단주의 세력이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며 주류 보수정당을 압박해 가는 흐름 속에 탄생했다. 전광훈류의 극우 개신교 세력이 당원으로 대거 유입됐고, 이들의 극단적 과격주의에 당이 휘청였다. 김종인·이준석 등에 의한 단절의 시도는 지도부가 바뀌며 유야무야됐다.
12·3 내란은 이 당이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의 외피마저 벗어던지게 만들었다. 지도부를 위시한 당의 다수파가 군을 동원한 헌정 파괴 시도를 옹호하고, 사법부를 겨냥한 폭동을 두둔하며 잠복해 있던 배외주의와 소수자 혐오에 불을 댕겼다. 전형적인 극우의 행태였다. 이것은 누구 책임일까. 분명한 사실은 당원과 지지자의 정책 선호와 정치의식은 그들이 동일시하는 당의 정책과 이념 지향에 강하게 영향받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 정당의 이념과 행태가 극단화되고, 그 결과가 정치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당원이 아닌 정당과 지도자 그룹에 책임을 묻는 게 온당하다.
12·3 내란은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압살하려는 집단이 한국 사회에 상당 규모로 존재할 뿐 아니라, 극우 사회세력과 보수 정치세력의 동맹이 심각한 단계까지 진전됐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악의 상황은 두 세력의 동맹체가 의회정치와 정당체제를 수시로 교란하면서 언제든 집권이 가능한 집단으로 정치사회에 남아 있는 경우다. 6·3 대선은 이를 가늠할 첫 시험대다.
길은 두 갈래다. 하나가 헌정수호연합의 주도세력에 압도적 지지를 몰아주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내란에 동조했던 세력의 정치 지분을 공동체가 제어 가능한 수준에 묶어두는 ‘분할과 견인’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두 길이 하나로 수렴하는 유토피아적 결말의 가능성을 지레 닫아놓을 필요는 없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극복자로서도 온다”던 발터 베냐민(1892~1940)같은 예언자도 있었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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