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윤 탄핵 집회’ 가수 하림 “국가기관 돌연 섭외 취소…블랙리스트 오해 부를 것”

한겨레
원문보기

‘윤 탄핵 집회’ 가수 하림 “국가기관 돌연 섭외 취소…블랙리스트 오해 부를 것”

속보
김용현 측, 구속영장 심문기일 변경신청서 제출
가수 하림. 이재훈(스튜디오 시믈) 제공

가수 하림. 이재훈(스튜디오 시믈) 제공


음악인 하림이 지난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노래했다는 이유로 국가기관 주최 행사에서 섭외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부디 이번 소동을 교훈 삼아 노래가 안전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림은 13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계엄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 시점에 며칠 앞으로 다가온 국가기관 주최 행사에서 갑작스럽게 섭외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이유는 작년에 광장에서 노래했다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다만 이 국가기관이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림은 “남북 청소년 관련 행사라 낮은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기로 하고 이미 포스터까지 나온 일에 이런 식의 결정을 한 것은 또 다른 블랙리스트 같은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위에서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자 하림은 재차 에스엔에스에 “아마 누군가가 알아서 눈치 보느라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이해하려 노력해보지만 함께 공연한 동료들 역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하진 않을까 걱정됐다”고 글을 올린 이유를 적었다.



이와 관련해 하림은 14일 한겨레에 별도의 입장문을 보내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도, 반격할 마음도 없었다. 그저 제가 아무 말 없이 넘기면 다음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이유로 상처받게 될까 봐 짧게나마 글을 남긴 것”이라며 “듣기로는 (섭외를 취소한) 담당자의 시말서 정도로 서로에게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노래가 전부인 음악가들이 추운 겨울 광장으로 나갔던 이유는 그곳에 전부인 삶을 내던지고 나온 사람들이 있어서였을 것”이라며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구호와 깃발을 잠시 멈추고 노래에 기대기 위해, 그들 누구도 낙엽처럼 쓸려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작은 소동을 알렸다. 부디 이번 소동을 교훈 삼아 노래가 안전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심경을 전했다.



하림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도 입장문을 보내 “저는 예전부터 이런 식의 섭외 취소 통보를 여러 차례 받아왔다”며 “어떤 조직적인 블랙리스트의 결과라기보다는, 그저 누군가의 눈치 보기나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일을 확대하거나 싸움처럼 번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경우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약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일을 일으킨 기관을 굳이 특정하진 않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번지자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실무진이 기획사와 행사안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출연자(하림)가 작년 말 대통령 퇴진 집회의 주요 공연자라는 걸 알게 됐다”며 “행사 예정 시기가 대선 기간이라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섭외를 중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다만 “부처 차원에서 배제 방침이나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림은 지난해 12월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출국’ 등 자신의 노래를 부른 바 있다.





하림이 한겨레에 보낸 입장문 전문



얼마 전, 행사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기사화되며 하루 종일 조금은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도, 반격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아무 말 없이 넘기면 다음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이유로 상처받게 될까 봐 짧게나마 글을 남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질문들은 점점 본질에서 멀어졌습니다. 기관의 이름을 묻고, 사실을 캐묻는 말들 앞에서 저는 조용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싸움 안에서 동료나 후배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막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제 침묵의 뜻을 헤아려준 매체가 있었고 이야기는 큰 분란 없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담당자의 시말서 정도로 서로에게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양비론은 너무 무디고, 양가론은 왠지 비겁할 때, 노래는 어디쯤에 서 있어야 하는 걸까.



예전에 광화문에 노래하러 간다고 했을 때, 어떤 분이 오뎅차를 보내주겠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담 너머 어르신께도 보내주신다면 저도 받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추위와 배고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요. 그 제안은 정중히 거절되었지만, 그 마음 역시 저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요즘 들어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약자의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고요. 그리고 노래는, 그런 우리에게 방패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읽고, 쓰고, 노래하며 작은 방패를 닦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노래는 칼도 아니고, 방패도 아니라는 것을요. 노래는 다만 노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 누군가에게는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노래가 전부인 음악가들이 추운 겨울 광장으로 나갔던 이유는 그곳에 전부인 삶을 내던지고 나온 사람들이 있어서였을 겁니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구호과 깃발을 잠시 멈추고 노래에 기대기 위해. 그들 누구도 낙엽처럼 쓸려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작은 소동을 알렸습니다. 부디 이번 소동을 교훈 삼아 노래가 안전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