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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연극 무대’ 이영애 “4kg 빠졌지만 서너배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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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연극 무대’ 이영애 “4kg 빠졌지만 서너배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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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 원작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 엘지아트센터 제공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 원작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 엘지아트센터 제공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는 포스터도 있는데, 그런 천진한 헤다 안의 그늘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배우 이영애가 32년 만에 무대에 서는 연극 ‘헤다 가블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36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이야기다.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에 내몰려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다 파국에 이르는 헨리크 입센 원작의 주인공 헤다를 이영애는 도도하고 서늘하면서도 천진스러운 여성으로 연기한다. 헤다란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을 흔히 페미니즘 맥락이나 전형적인 ‘팜 파탈’로 그리는데, 이영애의 연기는 이런 캐릭터 설정과 거리가 있다.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엘지(LG)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영애는 “드라마, 영화에서 하지 못했던 걸 무대에서 펼치고 싶었는데 이렇게 행복한 짐이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카메라 앵글로 보이는 이영애는 존재감이 강하다. 어떤 연기를 선보여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강렬함을 내뿜는 배우다. 그런 그가 무장 해제하고 전모를 드러내는 무대에선 스스로 가벼워지려고 한다. “너무 세기만 한 게 아니라 말랑말랑한, 예민하긴 하지만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헤다로 그리고 싶었어요.” 캐릭터의 강렬함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영애는 “헤다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라며 “원작을 봐도 크게 강한 느낌을 못 받았다”고 답했다. “요즘 사람들도 누구나 자기 안에 헤다가 들어있을 거거든요.”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 인물이지만 악녀로 그리기보다 좀 더 설득력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왼쪽)와 백지원. 엘지아트센터 제공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왼쪽)와 백지원. 엘지아트센터 제공


이영애는 무대에 복귀한다면 ‘헤다 가블러’로 하겠다고 일찌감치 낙점해두고 있었다. “오로지 헤다 중심으로 그려가는 타이틀롤이잖아요. 무작정 헤다를 얻고 싶은 욕망이 있었나 봐요.” 그는 “사실 엘지아트센터에서 다른 작품을 제안받았는데, 제가 헤다가 더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작품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연극 복귀 계기는 배우 전도연이었다. “작년에 전도연씨의 ‘벚꽃동산’을 보면서 무대에 대한 동경이 커졌어요. 50대 나이가 되어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폭넓은 감정도 켜켜이 쌓이다 보니 헤다를 표현하기에 좀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연극은 카메라에 능숙한 35년차 배우 이영애의 눈빛과 표정 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대 위의 다른 배우가 촬영한 클로즈업 영상을 무대 뒤편에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영애는 “앵글에서 연기해 왔던 사람이다 보니 그 앵글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의상은 그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헤다는 보라색이어야 할 것 같았어요. 스커트보다 바지가 어울리지만, 바지만 입기엔 제도적 관습을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기에 그 중간의 치마바지가 맞겠다고 생각했고요.”



연극 ‘헤다 가블러’에 출연한 배우 이영애. 엘지아트센터 제공

연극 ‘헤다 가블러’에 출연한 배우 이영애. 엘지아트센터 제공


22살이던 1993년 출연한 연극 ‘짜장면’ 이후 54살이 되어 32년 만에 오르는 무대이니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처음엔 ‘현타’(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타격)가 크게 왔어요.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 관객이 중간에 나가는 악몽까지 꿨어요.” 그는 “힘들어서 4㎏ 정도 빠졌는데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 행복한 다이어트”라며 “‘영애씨, 그렇게 연기하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듣고 꿈속에서 엉엉 울었을 정도”라고 그간의 부담감을 비쳤다.



무엇보다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의 간극을 건너야 했다. “다른 연극 배우분들과 발성이 너무 다른 거예요. 베테랑 연극배우들 사이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어 큰일났다 싶었죠.” 그는 “연기 지도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무대 연기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을 듣고,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도 잘 가르쳐줘서 조금씩 배워가면서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엔 김정호, 지현준, 이승주, 백지원 등 무대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 함께한다.



그러면서도 벌써 다음 무대에 대한 의욕을 드러낸다.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하나하나 깨우치는 게 공부가 돼요. 무대 위에서 희열이 느껴지는 게 행복해요.” 그는 “너무 힘들지만, 매체보다 무대가 서너배 재미있다”며 “당장은 여건이 안 되겠지만, 이번에 제가 너무 쉽게 연기해 왔다는 걸 배워서 다음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소극장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저와 관객이 심리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에 서고 싶어요. 배우와 관객이 서로 심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소극장 같은 곳 말이죠.”



공연은 다음달 8일까지.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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