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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투자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리야드/신화 연합뉴스 |
13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동 순방을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전격 해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중동 외교 정책에 있어 극적인 전환으로 평가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6000억 달러(약 850조원)에 달하는 거래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중동 순방에서 이스라엘이 제외되면서 이스라엘 내에서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왕궁에서 열린 ‘미국-사우디 투자 포럼’ 연설에서 “시리아에는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며 시리아와 관계 회복을 위해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왕세자를 위해 내가 하는 일 좀 보라”며 이번 결정이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 빈 살만 왕세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암시했다.
이 조처로 미국의 오랜 시리아 제재가 해제되면 미국은 시리아와 외교 관계 복원을 위한 첫발을 내디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에서는 지난해 12월 아흐메드 샤라아가 이끄는 무장단체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50년 넘게 집권한 독재 정권 아사드 정권을 축출한 뒤 과도정부를 출범시켰다. 아사드 하산 시바니 시리아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에 “이번 결정은 시리아 재건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약 1420억 달러(약 201조원)에 달하는 방위산업 계약을 맺었다고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미 방산기업 10여곳 이상이 사우디에 최첨단 무기 체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계약을 포함해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중 60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실질적으로 공개된 프로젝트들의 총액은 2830억 달러로, 발표된 액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그마저도 일부 사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기 이전부터 이미 추진되고 있던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에너지, 국방, 광물 자원 등 다양한 분야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번 계약을 포함한 다양한 투자 협정이 장기적으로 1조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포럼에서 이란 핵 문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나는 이란 지도자들의 과거 혼란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낫고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해 오늘 여기에 있다”라며 “더 낫고 안정된 세상을 위해 과거의 충돌을 종식하고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과 관련해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라며 “이란과 협상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이 올리브 가지를 거부하고 이웃 국가를 계속 공격한다면 우리는 최대 압박을 가하고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로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도 짧게 언급했다. 그는 가자 지구의 민간인들이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자격이 있다면서도, “하마스가 납치, 고문, 민간인 공격 같은 수단을 택하고 있는 한 그러한 미래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를 향해 2020년 자신이 주도했던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하길 바란다고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언젠가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이룰 것”이라며 “하지만 그 시기는 사우디가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번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주요 해외 순방이다. 사우디를 시작으로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잇달아 방문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도 사우디를 첫 순방지로 택한 바 있다. 이번 순방에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샘 알트먼(오픈 에이아이) 등 미국의 유력 경제인들이 대거 동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중동 순방에서 이스라엘 방문을 생략한 것을 두고도 이스라엘 내에서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은 최근 이스라엘과 여러 사건에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배제한 채 하마스와 미국인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을 벌였고, 예멘 후티 반군을 상대로 진행하던 공습을 이스라엘에 사전 통보 없이 갑자기 중단하기도 했다.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 노선인 이스라엘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산 제품에 17%의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조치들을 복원했지만, 최근 외교 기조는 이스라엘과 공동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에 방점을 찍고 있다”며 “중동 외교에서 승리를 원하는 트럼프에게 이스라엘은 더 이상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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