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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리포트] '코로나19로 뜬 스타' 전 세계 디지털 신분증 표준 만드는 심재훈 호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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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리포트] '코로나19로 뜬 스타' 전 세계 디지털 신분증 표준 만드는 심재훈 호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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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접종 증명하는 '쿠브' 앱 개발로 유명
"각종 디지털 신분증 개발해 비자 같은 세계 1등 회사 만들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됐을 때 전 국민이 사용한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가 있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인 디지털 예방접종 증명서 '쿠브'(COOV)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확인해 주는 쿠브를 만든 주인공이 2022년 신생기업(스타트업) 호패를 설립한 심재훈(33) 대표다.

호패는 여권, 운전면허증, 졸업증명서 등 각종 신분증과 증명서 등을 디지털로 제공하는 업체다. 디지털 신분증은 단순히 종이를 디지털 파일로 바꾸는 것을 넘어 함부로 위조나 복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기술이 핵심이다. 또 세계 각국이 인정해야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유엔은 산하에 디지털 신분증 기술 표준을 만드는 오픈월렛 포럼을 두고 있다. 심 대표는 오픈월렛 기술이사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 사실상 전 세계 디지털 신분증 기술 표준을 만드는 핵심 인물이다.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심 대표를 만나 디지털 신분증에 대해 알아봤다.

디지털 신분증을 개발하는 심재훈 호패 대표가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자체 개발한 e스포츠용 디지털 신분증 '플레이ID'를 들어 보이고 있다. 현재 770명의 프로게이머가 사용하는 플레이ID는 이름, ID, 대회 전적 등이 수록돼 인터넷에서 대신 시합을 치르는 등 부정행위를 막는다. 박시몬 기자

디지털 신분증을 개발하는 심재훈 호패 대표가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자체 개발한 e스포츠용 디지털 신분증 '플레이ID'를 들어 보이고 있다. 현재 770명의 프로게이머가 사용하는 플레이ID는 이름, ID, 대회 전적 등이 수록돼 인터넷에서 대신 시합을 치르는 등 부정행위를 막는다. 박시몬 기자


쿠브 개발로 겪은 봉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심 대표는 현지에서 LG CNS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하던 그는 디지털 지갑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2020년 사내 벤처에 선정됐다. 이것이 쿠브 개발의 시작이다. "사내 벤처 독립을 준비하던 중 LG CNS 고객사였던 블록체인랩스의 제안으로 질병관리청이 배포한 쿠브를 개발했어요. 쿠브 덕분에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 초청을 받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졌죠."

유명해진 것과 달리 그는 쿠브 때문에 힘든 일을 겪었다. "쿠브를 재능 기부 형태로 개발해 돈을 전혀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당시 국정감사 때 왜 이름 없는 회사에 개발을 맡겼냐며 질병관리청이 닦달을 당했죠."

심지어 당시 야당 국회의원은 쿠브 앱에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썼다며 문제 삼았다. "해외에 나가면 여권과 백신접종 증명을 동시에 보여줘야 해서 신형 여권과 같은 색으로 쿠브 앱을 만들었어요."

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까지 받았다. "정부 배포 앱은 국정원에서 소스 코드를 분석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도 계속 점검해요."


범죄 노출 막는 디지털 신원증명


쿠프 개발이 끝난 뒤 심 대표는 호패를 창업했다. 호패는 디지털로 신분을 증명하는 각종 기술을 개발한다. 그동안 디지털 신분증이 퍼지지 못한 것은 어느 한곳에 정보가 집중되는 중앙화 기술로 개발하면 위변조 및 복사에 취약하고 개인정보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2022년 7월 인터넷 표준을 만드는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에서 국제 표준으로 채택한 탈중앙화 신분증명(DID) 기술이다. DID는 여러 곳에 원본을 나눠 보관하는 분산저장기술인 블록체인을 이용해 디지털 신분증의 위변조 및 복사를 막고 개인정보도 보호한다.

중요한 기술 규격은 유엔 산하 오픈월렛포럼에서 정한다. 심 대표는 오픈월렛의 기술이사회 부의장을 맡아 3개월 간격으로 한국과 미국, 유럽을 이동하며 일한다. "오픈월렛에서 각국 정부에 전문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 한국 대표로 제가 참가하게 됐어요."


특히 DID는 기존 신분증에서 불가능한 선택적 정보 공개를 할 수 있다. 이는 범죄 예방으로 연결된다. "DID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감추는 등 보여주고 싶은 신분증 정보를 이용자가 선택해요. 상점 등에서 미성년자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며 주소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는 등 과도한 개인정보 노출이 범죄로 연결될 수 있어요."

현재 DID 기술로 발급된 국내 디지털 신분증은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공무원증, 외국인 등록증이 있다. 디지털 여권은 해외 각국의 승인이 걸려 있어 아직 발급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전 국민이 사용한 디지털 백신접종증명 '쿠브' 앱을 만든 심재훈 호패 대표는 유엔 산하 오픈월렛포럼의 기술이사회 부의장을 맡아 디지털 신분증의 세계 기술 표준을 정하는 일을 한다. 박시몬 기자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전 국민이 사용한 디지털 백신접종증명 '쿠브' 앱을 만든 심재훈 호패 대표는 유엔 산하 오픈월렛포럼의 기술이사회 부의장을 맡아 디지털 신분증의 세계 기술 표준을 정하는 일을 한다. 박시몬 기자


e스포츠 올림픽 겨냥한 플레이ID 개발


호패는 디지털 신원 증명 기술로 세 가지 사업을 한다. 우선 각종 디지털 증명서를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hDCX'라는 디지털 지갑을 제공한다. 세계 각국의 규제와 기술 표준에 맞춰 개발되는 hDCX는 '삼성월렛', '애플 지갑'처럼 각종 디지털 증명서를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다.


두 번째 사업은 디지털 신분증을 검증하는 'h커넥트' 솔루션이다. "네이버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간편 인증의 국제판 같은 사업이죠. 세계 각국에서 쓰이는 디지털 신분증 180종 가운데 22종을 검증해요. 상반기 중 검증 가능한 디지털 신분증을 110종으로 늘릴 예정입니다."

디지털 신분증 검증은 세계 각국마다 법인을 둬야 해 만만한 사업이 아니다. 현재 호패는 3개국에 법인이 있으며 올해 안에 해외 법인을 40개 이상 만들 계획이다. "대기업도 해외 법인 설립에 최소 6개월 이상 걸려서 해외 법인을 두지 않은 지역에서는 호패를 거쳐 검증 사업을 할 수 있죠."

세 번째는 디지털 신분증 발급과 '플레이ID' 사업이다. 플레이ID는 e스포츠를 즐기는 프로 선수와 아마추어들을 위한 디지털 신분증이다. 여기에 선수 이름과 이용자번호(ID), 대회 전적, 부정 행위에 따른 제재 내역 등이 수록된다. 또 신원 인증을 통해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시합을 치르는 부정 행위를 막는다.

플레이ID는 e스포츠 올림픽과 직결된다. 심 대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7년부터 2년 주기로 개최하는 e스포츠 올림픽에 참가할 국가대표 선발 등 각종 대회에 플레이ID 활용을 기대한다. "현재 770명의 프로게이머가 플레이ID를 사용해요. 올해 200개 대회에서 플레이ID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나이트클럽 DJ 1등이 일하는 회사


직원 21명 중 절반가량이 프랑스, 독일, 브라질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어서 영어로 소통하는 이 업체는 독특한 사람을 뽑는다. "무엇이든 1등 경력이 있으면 뽑아요. 게임과 포커 대회, 술마시기 대회 1등을 한 사람들을 비롯해 전 세계 미슐랭 스타 식당을 가장 많이 간 사람, 나이트클럽 DJ 대회 1등을 한 직원도 있어요."

독특한 채용을 고집하는 것은 심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1등은 보이지 않은 길을 간 사람이에요.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스타트업은 개척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해요."

호패의 지난해 매출은 3억5,000만 원, 올해 매출 목표는 10억 원이다. "내년에 EU에서 디지털 신분증이 확산되면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겁니다." 투자는 본엔젤스파트너스, 뮤렉스파트너스, SV인베스트먼트와 일본 제트벤처캐피털, 미국 500글로벌 등에서 누적으로 69억 원을 받았다.

디지털 신분증 분야의 1등을 꿈꾸는 그의 목표는 비자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다. "비자 표시가 붙은 신용카드가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것처럼 호패를 전 세계 어디서나 쓰이는 디지털 신원 인증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