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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300만 원' 포항지진 위자료 2심서 없던 일로..."시민 고통 외면"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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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300만 원' 포항지진 위자료 2심서 없던 일로..."시민 고통 외면"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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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특검 "김용현 구속 심문 관련 의견 제출"
포항 지진 소송 항소심서 뒤집혀
소송 낸 포항시민 한 푼도 못 받아
지열발전이 지진 일으킨 건 인정
"참여 기관 과실 입증은 부족" 판단
소송 주도한 시민단체 거센 항의
포항시도 "상식과 법 감정서 벗어나"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한 건물 기둥이 무너져 내릴 듯 파손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한 건물 기둥이 무너져 내릴 듯 파손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심에서 '1인당 200만~300만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경북 포항 지진 위자료 청구소송이 항소심에서 '0원'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정부 연구개발사업으로 진행된 지열발전이 포항 지진을 촉발했다는 원고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참여 기관의 과실로 보기에는 증거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13일 대구고법 민사1부(부장 정용달)는 포항시민 11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포항 지진 정신적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도 포항지열발전사업이 지진을 촉발했는지, 참여 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등이 핵심 쟁점이었지만 재판부 판단은 1심과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조사 결과 등으로 미뤄 지열발전사업으로 지진이 촉발됐다고 인정하면서도 감사원 감사나 정부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지적된 사업 참여 기관의 업무 미흡으로 지진이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열발전사업을 주도한 넥스지오 등이 충분한 조사와 자문을 거쳐 사업 부지를 선정한 점 △지열발전 부지에서 지진을 촉발할 수 있는 활성단층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점 △300차례가 넘는 미소지진(진도 1~3의 약한 지진)이 발생했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 관리 방안이 부실하지 않았던 점 △관리 방안을 위반해 지진이 촉발됐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포항지열발전사업 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포항지열발전사업 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재판부는 "포항 지진 발생 7개월 전 지열발전 현장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일어나자 넥스지오 등은 지하 물 주입을 중단했고 이후로는 안정적인 물 주입을 시행했다"며 "기록을 검토한 결과 물 주입에 의해 지진이 발생했다 해도 과실 부분은 입증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포항지열발전사업을 주관한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기술평가원이 지열발전과 지진의 연관성·위험성·안전관리의 필요성을 충분히 예견했고, 2006년 스위스 바젤에서 지열발전으로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해 사업을 중단한 사실을 알면서도 규모 3.1의 포항 지진 때 지열발전을 중지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인당 200만~300만 원의 정부 배상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 후 포항에서는 시민운동이 일어나듯 대규모 소송전이 펼쳐졌다. 1심 때 4만7,000여 명이 참여했으나 판결 뒤 포항 인구와 맞먹는 약 50만 명이 동참해 역대 집단 소송 중 가장 많은 원고를 기록했다. 배상액도 법정 이자율을 포함해 많게는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날 항소심에서 1심과 정반대 결론이 나오자 소송을 주도한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은 법정 입구에서 "50만 포항시민이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재판부를 규탄한다"고 고함을 외치기도 했다.

경북 포항 지진 관련 시민단체들이 13일 대구고법 앞에서 항소심 판결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구=김정혜 기자

경북 포항 지진 관련 시민단체들이 13일 대구고법 앞에서 항소심 판결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구=김정혜 기자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와 포항11·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판결 직후 대구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명백한 인재로, 이번 판결은 포항 시민들의 고통과 책임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라고 목청을 높였다. 시민단체들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판결은 지진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시민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 스스로 여러 기관을 통해 지열발전사업과 지진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상식과 법 감정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2017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포항지열발전 현장 인근에서 일어난 규모 5.4의 포항 지진 본진은 기상청 관측 역사상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이었다. 1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부상을 입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본진과 여진을 합쳐 아파트 등 주택 331동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무너졌고, 2만5,518동이 파손됐다.

대구·포항=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