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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제 없이 ‘출산 가산점 검토’?···“졸속 정책, ‘받아놓은 표’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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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제 없이 ‘출산 가산점 검토’?···“졸속 정책, ‘받아놓은 표’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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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산 가산점 관련 메시지. SNS 캡처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산 가산점 관련 메시지. SNS 캡처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대선후보의 ‘군복무 경력 호봉 반영 공약’이 여성 차별 정책에 해당한다는 항의성 문자에 “여성은 출산 가산점이 있을 것”이라고 답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 청년 들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나오자 민주당은 “출산 가산점제에 대해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사과한 뒤 중앙선대위 유세본부 본부장직을 사임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이 후보의 대선 10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군 복무 경력 호봉 반영’을 하위 항목으로 포함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이 여성 공약은 내놓지 않으면서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나왔다.

같은 날 김 의원이 해당 문제를 항의하는 문자메시지에 답변하면서 ‘출산 가산점’을 언급해 의혹이 더 커졌다. 김 의원은 “여성은 출산 가산점과 군 가산점이 있을 겁니다. 군 안 간 남성은 군 가산점이 없습니다. 남녀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직 최종 공약은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답변했고 이를 캡처한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했다. 김 의원의 ‘출산 가산점’ 발언을 지적하는 엑스(X·옛 트위터) 글의 조회수는 하루만에 100만회를 넘었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국회 로턴더홀에서 열린 ‘국민의힘 내란 비호 44인 규탄 ’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국회 로턴더홀에서 열린 ‘국민의힘 내란 비호 44인 규탄 ’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논란이 확산하자 민주당 중앙선대위 공보단은 13일 “출산 가산점제에 대해 검토하거나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개인적인 답변이었으나 표현에 있어 부족함이 있었다”며 “상처받으신 분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여성 유권자들은 ‘출산 가산점’이라는 발상 자체에 분통을 터뜨렸다. 박규리씨(28)는 13일 기자와 통화에서 “여성이 취업하려면 애를 낳고 와야 한다는 건가. 난임 여성들은 어떡하나”라며 “여성의 생명과 안전이 아직도 위협받는 상황인데 여성 대상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고 대책 마련하겠다는 후보자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A씨(25)는 “출산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 20~30년 책임져야 할 생명이 생기는 일이다. 민주당에서도 군대와 출산을 동일하게 보는 거라면 실망이다”라고 했다. 취업 준비생 B씨(26)는 “군 가산점제가 남녀임금격차를 더 심화할 수 있다”며 “미혼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등 군 가산점제 및 호봉 인정과 동등한 수준의 여성 정책을 다시 고민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C씨(29)는 “군 가산점제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 없이 여자들은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는 짧은 생각이 보인다”며 “당장 남성 지지자 표를 잃기는 두려우니 군 가산점제는 손대지 않고 여성에게 졸속 정책만 내세우는 꼴”이라고 했다.

2030 여성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씨는 “여성 의제가 없으면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뽑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받아놓은 표 취급하는 것에 질렸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었는데 정작 여성들의 목소리는 삭제됐다는 실망감, 허탈함, 자괴감의 목소리가 크다”며 “무효표가 나온다는 건 100여년 동안 싸워 얻은 투표권을 여성 스스로 반납하는 것인데, 그 심정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출산 가산점제가) 가임기 여성에게 가치를 두고 여성의 생물학적 책임을 다할 때만 사회적 보상을 한다는 차별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여성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후보·의제가 사라진 것은 동시대 모든 여성의 사회적인 입지가 그러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지속해서 실현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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