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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원작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동충하초가 인간에게 감염되며 인류가 좀비화 된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격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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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디오게임이 원작인 미드 ‘라스트 오브 어스’를 보면, 사람들이 곰팡이에 감염되어서 좀비가 되는 이야기가 나와요. 곰팡이에 감염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을 물어서 균을 전달하는 거로 나오기도 하고요. 정말 곰팡이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건가요?
A.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돼 2023년 처음 공개됐죠. 지난달 미국과 국내에서도 시즌2가 공개되면서, 다시 드라마 속 곰팡이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작품 배경을 살펴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2000년대 초 인류는 변이를 일으킨 ‘동충하초’(Cordyceps)에 감염되면서 좀비처럼 변하게 됩니다. 균이 사람들의 몸속에 침투해 번식하면서 결국 뇌를 지배한다는 설정인데요, 이렇게 균에 지배당하게 된 생명체들은 더 많은 ‘동료’를 만들기 위해 비감염자들을 추격하고 깨무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공상과학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 익숙한 내용인지라 그다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몇몇 세부 설정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극 중에서 사람들을 감염시킨 동충하초인 ‘좀비 곰팡이’(Ophiocordyceps unilateralis)와 그 ‘친척’들은 실제로 곤충, 절지동물, 다른 곰팡이에게 기생해 생존과 번식을 이어갑니다.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좀비 곰팡이는 포자를 통해 먹이를 찾는 개미를 감염시킨 뒤 개미의 외골격에 침투해 천천히 개미의 행동을 장악합니다. 균사에 점령당한 개미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식물의 줄기나 잎 뒷면을 턱으로 꽉 깨물고 죽는데 이는 곰팡이가 개미의 머리를 뚫고 포자를 흩뿌릴 수 있도록 유도한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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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맥을 물고 죽음을 기다리는 ‘좀비 개미’. 데이빗 휴스/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제공 |
드라마의 프롤로그에는 곰팡이의 확산이 기후변화와 인간의 환경 파괴·산업 활동 등으로 말미암았다는 암시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시즌1의 첫 에피소드에서 과학자들은 곰팡이가 인간을 감염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높은 체온 때문인데, 기후변화로 곰팡이가 따뜻한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 감염 가능성도 커진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세상이 계속 더워지면, 곰팡이가 진화할 이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결국 팬데믹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가 진다”고 극 중 과학자는 경고합니다. 전염이 200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밀가루 공장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설정 또한 단일작물 재배와 글로벌 식품 공급망 등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한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곰팡이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재앙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는 걸까요. 해외 매체들은 드라마가 처음 공개된 2023년부터 최근까지 이러한 질문에 답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해왔는데요, 대부분의 학자는 이런 설정이 “흥미롭지만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과학작가이자 미생물학박사인 코라도 나이는 지난 9일(현지시각) 과학저널 ‘뉴사이언티스트’ 칼럼에서 “동충하초는 개미 등 특정 곤충에 특화된 기생 전략으로 진화했다”면서 “인간을 감염시키려면 37도에 이르는 높은 체온을 견디고, 인간의 복잡한 면역 체계를 뚫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곰팡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그런 ‘능력’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이런 진화에는 수백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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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코르도바도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동충하초에 감염된 파리의 모습. 텍사스대/위키미디어코먼스 |
곰팡이의 전파 방식 또한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처럼 깨물기나 접촉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 포자를 통해 전파됩니다. 스콧 로버츠 예일대 의대 감염병학과 조교수는 2023년 대학 누리집에 “자연에는 수백 만종의 곰팡이가 있지만, 대체로 사람에게 치명적이지 않다. 사람 간에 전파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곰팡이 팬데믹’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과학자들은 곰팡이 병원체가 실제로 공중보건을 위협하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감염 위험을 점점 더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로버츠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 항진균제 내성 증가, 장기이식이나 항암 등으로 인한 면역 억제 환자의 증가로 곰팡이 병원체 감염 위험이 더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2009년 처음 발견된 ‘칸디다 아우리스’(Candida auris)가 대표적입니다. 이 곰팡이는 고온에서도 번성하며,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도 2022년부터 곰팡이 병원체를 ‘우선순위 병원체’로 지정하고, 곰팡이 감염으로 해마다 약 1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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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원작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의 한 장면. 작품은 돌연변이 동충하초가 인간에게 감염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 SNS 갈무리 |
비록 드라마에서처럼 동충하초가 인류를 좀비로 만드는 일은 없겠지만, 곰팡이 병원체의 위험성이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현실 세계의 과학자들은 12년의 연구 끝에 미국 남서부에서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곰팡이 감염병 ‘계곡열’(Valley fever)에 대한 백신을 개발했고, 출시 직전이라고 합니다. 이 백신은 인간을 위한 최초의 ‘곰팡이 백신’이라고 합니다. 보통 수십~수백개의 유전자를 지닌 바이러스·박테리아와 달리 곰팡이는 무려 1만개가 넘는 유전자를 지니기 때문에 백신을 만들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드라마 속 대재앙이 아주 허무맹랑한 상상은 아닌 셈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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