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備 10억 달러 넘고 무기 급속 소진에, 미 인도ㆍ태평양 전력 차질 우려
“완전히 박멸하겠다”던 트럼프, 애초 ‘한 달 작전’으로 못 박아
후티 반군 “미국 물리쳤다” 소셜 미디어 환호
“완전히 박멸하겠다”던 트럼프, 애초 ‘한 달 작전’으로 못 박아
후티 반군 “미국 물리쳤다” 소셜 미디어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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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지난 5일과 6일 이스라엘 공군은 연거푸 예멘의 후티 반군 세력이 장악한 후데이다 항구와 수도 사나의 공항을 대규모 폭격했다. 미국 역시 3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같이 후티 군사 거점을 맹폭했다.
그런데 7일 갑자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을 선언했다.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국제 화물선과 미 전함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기로 했고, 미국도 공격을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휴전하더라도 후티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계속 된다는 것이었고, 나중에 드러났듯이 후티의 민간 화물선에 대한 공격 중지 ‘약속’도 없었다.
트럼프는 ‘폭탄 선언’을 하면서, 이스라엘과 협의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2000㎞나 떨어진 예멘까지 장거리 공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지만, 미국의 공습 규모와 정보력을 쫓아갈 수는 없다. 이스라엘이 후티 반군이 점령한 후데이다 항구를 네 차례 타격했지만, 후티는 강한 회복력을 보였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처럼, 후티 반군은 예멘의 산악 지형을 이용해 핵심 군(軍)자산을 지하로 숨기거나 은신하면서 공습을 피했다. 이스라엘 언론은 “트럼프가 깜짝 휴전으로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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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예멘 사나에서 열린 반미 및 반이스라엘 시위에서 후티 지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의 가면을 쓰고 있다./EPA 연합뉴스 |
후티는 2023년 11월부터 이스라엘과 홍해 상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테러에 대한 보복에 나선 직후였다.
이후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2024년 1월 ‘포세이돈 아처(Poseidon Archer)’ 작전을 통해 후티 공습을 시작했고, 트럼프도 올해 3월부터 ‘러프 라이더(Rough Rider)’ 작전으로 공격 강도를 대폭 높였다.후티를 폭격으로 굴복시켜서, 홍해 해상 운송을 정상화한다는 목표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한 달여 만에 갑자기 “승리했다”며 휴전을 선언한 것일까.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전쟁 시작 31일이 되는 날 공습에 따른 진전 상황 보고서를 요구했지만, 미 군부는 1100 차례의 공습에도 이렇다할 성과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12일 보도했다. 중동에서의 장기적인 군사 개입을 꺼렸던 트럼프가 애초 설정한 기한도 애초 30일이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10억 달러(약 1조 4187억 원)가 넘는 전비(戰費)를 썼지만, 얻은 것은 또 하나의 값비싼 그러나 결론 없는 미군 작전이었다.
후티는 미국의 MQ-9 리퍼 드론(무인 공격기) 7대를 격추했고, 미 항모 두 척과 전함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 와중에 미 해군의 주력기인 6700만 달러짜리 F/A-18 수퍼 호넷 두 대가 해리 트루먼 항모(航母)에서 벗어나 바다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쯤 되자 트럼프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 핵협상을 중재하던 오만 측이 후티와 관련해 ‘출구 전략’을 미국에 제시했다. 미국이 공습을 중단하고, 후티도 미 해군 전함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해를 지나는 해상 운송에 대한 공격 중지 합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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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9일 수도 사나에서 모의 미사일과 드론을 들고 반(反)이스라엘ㆍ반미 시위를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
트럼프 백악관은 5월 5일 중동 지역을 담당하는 미 중앙사령부에 공격 “중단”을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발표하면서, 후티 반군 세력에 대해 “(미군 공격을 견뎌내는) 엄청난 인내력과 용기를 보였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후티가 더 이상 선박에 발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우리는 그 약속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티는 9일에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향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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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경찰이 지난 4일 후티 반군 세력이 쏜 발사체가 떨어진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 주변 도로를 조사하고 있다./AP 연합뉴스 |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이전에 “압도적인 살상능력으로 목표를 이루겠다” “완전히 박멸하겠다”고 했던 후티에 대해 갑작스럽게 승리를 선언함으로써, 미 국가안보팀이 후티의 회복력을 얼마나 과소평가했는지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은 또 트럼프가 중동에 대한 미군 개입 장기화에 대해 얼마나 ‘낮은’ 인내심을 갖고 있는지도 오판(誤判)했다는 것이다.
댄 케인 미 신임 합참의장은 후티와의 장기전으로 인해, 인도ㆍ태평양 전력을 운용하는데 차질을 빚는 것을 우려했다.
애초 바이든은 미국의 강력한 공습이 후티의 국제적 위상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해 제한적인 공습만 허용했다. 이는 효과가 없었다.
트럼프가 취임하자, 미 중부사령부의 마이클 E 커릴라 사령관은 8~10개월의 대규모 공습을 제안했다. 후티의 방공망(防空網)을 우선 제거하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헤즈볼라 수뇌부 암살 작전처럼 정밀 타격에 나선다는 전략이었다. 후티 반군과 수년간 싸웠던 사우디가 후티의 암살 대상 간부 12명 명단도 제공했다. 그러나 사우디와 함께 후티를 공습한 경험이 있는 아랍에미리트는 증강된 미군 작전에 회의적이었다. 후티 전력의 신속한 재건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3월 초 “30일 내에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커릴라 사령관의 제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후 한 달 동안, 후티는 대당 3000만 달러나 하는 MQ-9 드론을 7대 격추하며 미군의 정찰ㆍ타격 능력을 약화시켰다. F-16, F-35 전투기가 후티 방공망에 거의 격추될 뻔한 사례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미군은 후티의 지휘 통제 시설과 방공시스템, 정밀무기 제조시설, 저장소 등 1,000곳 이상을 타격했고, 후티 고위 간부 12명 이상을 제거했다.
그러나 항모 2척과 B-2 폭격기, 전투기, 패트리엇ㆍ사드(THAAD) 방공 시스템까지 중동에 집결하면서, 한 달 만에 전비는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또 정밀 타격 무기들이 급속히 소진되면서, 중국의 타이완 침공에 대비한 탄약 비축량에도 우려가 제기됐다.
후티는 계속 미 전함과 드론, 화물선을 공격했고, 벙커를 강화하고 무기고를 지하로 옮겼다.
4월 하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팀은 트럼프에게 보고할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토의했다. ▲1개월 더 작전하고 항모 2척을 동원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홍해에서 전개하고 이때 후티가 발포하지 않으면 승리를 선언하거나 ▲예멘 정부군이 후티 반군 세력을 수도와 주요 항구에서 격퇴할 때까지 작전을 연장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J D 밴스 부통령,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은 모두 ‘작전 연장’에 반대했다. 케인 합참의장도 인도ㆍ태평양 전력을 위해서 장기적인 작전에 반대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입장이 오락가락했다.
그러던 중에 4월 28일 후티 공격을 피해 트루먼 항모가 급선회 하면서, 수퍼호넷 한 대가 바다에 빠졌다. 5월4일엔 후티 미사일이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고 벤구리온 국제공항 인근에 떨어졌다. 5월5일엔 또 다른 수퍼호넷이 항모 착함(着艦) 중에 착함 와이어를 놓쳐 바다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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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9일 수도 사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얼굴 사진을 씌운 사람 목덜미에 체인을 감고, 트럼프의 목을 조르는 시위를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
트럼프는 결국 이 시점에서 ‘러프 라이더’ 작전을 ‘성공’으로 매듭짓기로 결심했다. 15년 전만 해도 거의 아무도 몰랐던 예멘의 가난한 부족 무장세력인 후티는 곧 소셜미디어에 “예멘이 미국을 물리쳤다”며 자신들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고립감: 트럼프 중동 순방에서도 빠져
후티 반군의 벤구리온 공항 공격 이후 현재 이스라엘을 오가는 국제 항공편은 중단됐다.
이스라엘로서는 현재 이란과 핵 협상을 하는 트럼프가 어느날 갑자기 이스라엘을 배제하고 핵 합의를 발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고립되고, 이스라엘이 미국의 도움 없이 유사 시 이란을 상대로 단독 공격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휴전을 이끌어낸 오만 정부의 노력에는 “미국과 핵 협상을 하는 동안 후티가 미군 자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한” 이란 정부의 압력도 한몫을 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도 있었다.
이스라엘 안보연구소(INSS)의 선임연구원 대니 시트리노비츠는 일간지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 중단 결정으로 이스라엘 혼자 예멘의 테러 조직과 싸우는 상황이 됐다”며 “이는 미국 정부가 자국 이익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며, 그 이익이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켰다”라고 말했다.
13~16일 사우디ㆍ카타르ㆍ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의 최대 부국(富國) 3국을 방문하는 트럼프의 중동 일정에 이스라엘이 빠진 것도 이스라엘에선 더 많은 ‘깜짝 발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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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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