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겨 여자 싱글 이해인이 3월27일(한국시각) 미국 보스턴 티디(TD)가든에서 열린 202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보스턴/로이터 연합뉴스 |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후배 선수 성추행 혐의로 피겨 선수 이해인에게 부여한 ‘3년 자격 정지’ 징계가 취소됐다. 소송전으로 번졌던 이 사건은 ‘징계 무효’ 조정으로 최종 마무리돼 이해인은 억울함을 벗고 올림픽을 향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해인쪽 대리인 김가람 변호사는 13일 “빙상연맹의 새로운 집행부는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해인과 유영 두 선수가 이미 4개월 이상 자격이 정지된 상태로 많은 반성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해 조정안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양쪽은 △지난 2024년 6월20일자 징계가 무효임을 확인하고 △향후 동일한 사안을 놓고 연맹이 다시 징계하더라도 두 사람의 혐의를 징계 사유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조정안을 수용했다. 김가람 변호사는 “두 선수는 향후 추가적인 자격정지 없이 정상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이해인과 유영은 이탈리아 바레세에서 진행된 국가대표 전지훈련 기간 중 동료 선수와 숙소에서 음주하고, 후배 선수 ㄱ씨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한 혐의로 빙상연맹으로부터 각각 자격 정지 3년과 1년 처분을 받았다. ㄱ씨는 이성 선수 숙소를 방문한 사유로 견책 처분했다.
자격 정지를 당한 두 선수는 이해인과 ㄱ씨가 연인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해인은 ㄱ씨와 주고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내용 등을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추후 두 선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지만, 기각당했다.
이에 두 선수는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본안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해인의 성추행 혐의를 놓고 “성인이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애정 행위를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모두 추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며 가처분을 인용했다. 유영 역시 법원으로부터 가처분 인용 결정을 받았다.
법원의 결정으로 선수 자격을 일시 회복한 이해인은 사대륙선수권과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내년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올림픽 출전을 향한 꿈을 키웠다. 다시 은반 위에 선 이해인은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국제 대회 출전 자격을 확보한 뒤 3월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종 9위에 올랐다.
당초 빙상연맹은 법원의 가처분 인용에도 두 선수를 향한 징계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쪽은 본안 소송을 준비했는데, 도중 빙상연맹의 지도부가 바뀌면서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김가람 변호사는 “최근 연맹에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면서 사안을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빙상연맹이 보여준 ‘오락가락’ 행보는 향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시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피겨는 선수 생활이 매우 짧아 ‘자격 정지’ 징계만으로도 선수는 치명적인 손실을 보게 된다. 특히 이해인의 경우 자격 정지 3년을 받아들이면 올림픽 출전 무산은 물론 불명예 은퇴를 감수해야만 했다.
부실한 조사로 징계를 밀어붙인 뒤 소송전을 불사했던 빙상연맹은 올해 피겨 선수 출신 이수경 삼보모터스 사장을 회장으로 선출된 뒤 전향적인 자세로 사안을 다시 살폈다. 이수경 회장은 취임 뒤 이 사건을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회장 선출 뒤 태도를 바꾼 빙상연맹은 조정으로 자신의 처분을 뒤집는 사례를 남기게 됐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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