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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법원 “포항지진, 공무원 과실로 지진 났다 보기 어려워”… ‘정신적 위자료’ 항소심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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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대구고법 정문에서 포항지진범시민대책위가 포항지진 관련 항소심 패소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대구고법 정문에서 포항지진범시민대책위가 포항지진 관련 항소심 패소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과 2018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해당 지진이 국가의 지열발전사업으로 인해 촉발된 것은 맞지만, 관계기관의 고의·과실이 없다는 취지다.

최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가 손해배상금도 ‘0원’이 됐다. 포항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법원이 50만 포항시민의 권익을 빼앗았다”며 반발하며 항소를 예고했다.

대구고법 민사1부 정용달 부장판사는 지진 피해 포항시민 111명이 국가 등을 상대로 제기한 포항 지진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관련기관의 과실과 지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2심 재판부는 “국가배상법상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공무원, 관련기관 등의 고의 및 과실로 지진이 촉발되었어야 한다”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공무원이나 관련기관의 과실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한 충분한 입증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같이 지진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지열발전으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봤다.

지열발전은 땅속에 깊은 구멍을 뚫고 물을 주입하는 방식인데, 이때 주입된 물로 인한 수리자극으로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수리자극이란 물을 암반 내에 고압으로 주입해 틈을 만들거나 넓혀 암반의 투수율을 증가시키는 작업이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지진은 1심 판단과 같이 지열발전으로 인해 촉발된 지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13일 대구고법 정문에서 포항지진범시민대책위가 포항지진 관련 항소심 패소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대구고법 정문에서 포항지진범시민대책위가 포항지진 관련 항소심 패소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열발전으로 인한 지진 맞다…고의·과실 아니라 배상책임 없어


1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 배상책임이 완전히 뒤집힌 것은 정부 등이 지열발전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과실이 지진과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16일 지진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사업을 수행한 정부와 넥스지오 등 관련기관들의 과실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국가는 원고에게 1인당 200만∼300만원씩의 위자료를 줘야 한다”고 선고했다.


감사원도 이 사건과 관련해 관련기관의 안전관리 방안과 대응조치 부실 등 20건의 위법·부당 행위를 지적했다. 국무총리실 소속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는 지진 위험성 분석과 안전 대책 수립 미흡 등 이유로 관련기관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지열발전소 관계자와 연구원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지난해 8월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지열 발전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적된 과실들은 감사원 등의 사후적 조치에 따른 것으로 민사상 포항지진을 촉발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업무 과실로 지진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아 원고들이 신청한 국가배상 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넥스지오 등이 부지 선정 과정에서 지진을 촉발할 수 있는 활성단층의 존재를 파악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5차 수리자극에서 계획보다 많은 양의 물을 주입한 것이 지진을 촉발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이  13일 대구고법에서 열린 재판이 끝난 뒤 항의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이 13일 대구고법에서 열린 재판이 끝난 뒤 항의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소송인단 50만명 ‘반발’…“상고할 것”


시민들은 즉각 반발하며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시민은 재판장에서 뛰쳐나와 “50만 포항시민의 고통과 아픔 외면한 재판부를 규탄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모성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재판 뒤 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명백한 사법 농단이고 재판 농단”이라며 “포항 지진은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 지진이라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가 밝혀냈다. 정부가 포항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해도 아무 책임이 없단 말이냐”고 지적했다.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도 성명을 통해 “오늘 판결은 포항시민의 고통과 책임을 철저히 외면했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 이번 판결은 정의의 이름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정부 스스로 여러 기관을 통해 지열발전사업과 지진의 인과 관계를 인정한 상황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시민들의 상식과 법 감정에서 크게 벗어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조사연구단은 2019년 3월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 연구사업 과정에서 물을 주입하는 수리자극으로 촉발된 지진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2심 재판부의 판결로 포항 지진 위자료 소송은 줄줄이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을 전망이다. 이 소송에 참여한 소송인단은 49만9881명으로 지진 발생 당시 인구(51만9천581명)의 96%에 해당한다.

2심 판결을 앞둔 소송인단은 4만7000여명, 1심 판결을 앞둔 인원은 45만여명이다. 1심과 같은 수준인 200만~300만원으로 내려졌다면 배상금은 최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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