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컬래버레이션의 성공작'을 뽑으라고 하면, 곰표 밀맥주를 떠올릴 게다. '곰표' 브랜드를 소유한 대한제분과 맥주제조업체 세븐브로이는 곰표 밀맥주 하나로 놀라운 기록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갈등의 역사가 쌓이고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드물다. 視리즈 컬래버레이션 잔혹사 마지막 편 '곰표 밀맥주에서 중소기업이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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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협업한 곰표 밀맥주는 이후 여러 컬래버 맥주의 지표가 됐다.[사진|뉴시스] |
우리는 視리즈 컬래버레이션 잔혹사 1편(법정으로 간 곰표 밀맥주 컬래버 신화ㆍ635호)과 2편(곰표 밀맥주 갈등史ㆍ648호)에서 '곰표 밀맥주(대한제분+세븐브로이)'의 놀라운 성과를 조명했다.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물량 10만개 완판, 일주일 만에 판매량 30만개 돌파, 주요 판매처 CU에서 품절대란까지…. 대한제분(상표권)과 세븐브로이(제조ㆍ유통)가 함께 만든 곰표 밀맥주는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하지만 '컬래버 신화'의 끝은 초라하기만 하다. 2023년 3월 31일 계약이 끝난 후 지금까지 양측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가처분소송, 공정위 제소 등 다툼의 종류도 적지 않다. 3편에선 법적 다툼의 결과와 그 후 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그 전에 2편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계약 종료 후 세븐브로이는 곰표 밀맥주 시즌1을 2023년 9월까지 판매ㆍ유통할 권한을 얻었다. '시즌1 재고분'을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제주맥주'를 새 파트너로 선택한 대한제분은 2023년 5월 9일 '곰표 밀맥주 시즌2'를 출시하겠다는 밑그림을 발표했다. 대한제분의 계획대로라면 곰표 밀맥주 시즌1과 시즌2가 '같은 매대'에서 팔릴 수밖에 없었다.
재고를 털어내야 하는 세븐브로이는 2023년 5월 25일 법원에 "곰표 밀맥주 시즌2 제품의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한달 후인 6월 15일엔 대한제분을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 금지와 사업활동 방해행위 금지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제소했다.
대한제분이 세븐브로이가 진행 중이던 곰표 밀맥주의 해외수출을 자신들이 진행하겠다며 탈취했고, 세븐브로이의 핵심 제조기술을 경쟁사(제주맥주)에 전달하는 등 사업을 방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대한제분 측은 멈추지 않았다. 대한제분은 가처분소송의 첫 심리기일인 2023년 6월 21일에 곰표 밀맥주 시즌2를 출시해 버렸다. 세븐브로이가 "시즌2 판매를 저지해 달라"면서 제기한 가처분의 효력을 아예 없애버린 셈이었다.
'곰표 시즌1'을 제대로 털어낼 수 없었던 세븐브로이는 곰표 밀맥주의 OEM을 담당해온 음료제조업체 A사에 재고비용 등 배상액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세븐브로이는 공정위 제소를 취하하고 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좀 더 빠른 구제를 받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데, 실제로 곰표 밀맥주 시즌1의 재고분은 세븐브로이에 막대한 손실을 남겼다. 곰표 밀맥주 시즌1을 팔 수 있는 기한이 끝난 후인 2023년 10월 세븐브로이는 무려 1500톤(t)에 이르는 맥주를 폐수장에 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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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브로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한제분은 이미 생산해 놓은 '담금주'를 재고로 인정하지 않았다. 2023년 3월 31일 계약 종료 전에 캔에 담은 완제품 외엔 모조리 판매를 불허했던 거다. 그 결과, 생산을 완료한 담금주와 공캔 등 277만캔 분량을 폐기했다. 277만캔으로 날려버린 매출 추정치는 50억원에 달한다."
다만, 폐기량을 두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다음은 대한제분 측의 주장이다. "계약에 따라 당시 생산을 완료한 곰표 밀맥주 시즌1 재고를 6개월간 소진하도록 허락했다. 세븐브로이가 폐기한 맥주량이 많았던 건 그들이 과도하게 생산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세븐브로이의 과실 탓이지 대한제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공정거래조정원의 조정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조정 단계에서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에 재고 배상비용, 원부자재 손상 비용 등 173억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대한제분은 조정안으로 1억원 배상을 제시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공정거래조정원은 2024년 10월 공정거래법에 따라 조정 절차를 종결했다.
[※참고: 공정거래법 제77조 제4항 제3호는 분쟁당사자의 어느 한쪽이 조정을 거부하거나 해당 분쟁조정사항에 대해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등 조정 절차를 진행할 실익이 없는 경우 조정 절차를 종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양측은 가처분 소송, 공정위 제소, 공정거래조정원 조정 등 모든 법적 절차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대한제분의 해외사업 탈취 의혹, 핵심기술 유출 이슈 등의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세븐브로이 측은 "대한제분과의 배상 조정을 끝마친 후에 특허청과 수사기관 등에 관련 의혹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븐브로이가 왜 '법적 소송'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느냐는 점이다. 여기엔 협업 구조의 '비대칭성'이란 문제가 숨어 있다. 상표권을 가진 대한제분은 브랜드 '곰표 밀맥주'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맥주 제조를 맡은 세븐브로이는 '을乙'의 위치에 있었다. 이 때문에 세븐브로이는 "곰표 밀맥주의 핵심 제조기술을 알려달라"는 대한제분 측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대한제분이 세븐브로이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점도 곱씹어볼 문제다. 곰표 밀맥주 시즌1을 제조한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이 진행한 시즌2 제조사 공개경쟁입찰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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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사진|세븐브로이 제공] |
하지만 대한제분은 시즌1의 계약 종료일(2023년 3월 31일)까지 경쟁입찰의 결과를 세븐브로이에 통보하지 않았다. 세븐브로이가 시즌2의 제조사가 제주맥주로 결정됐다는 걸 공식적으로 확인한 건 대한제분이 시즌2 밑그림을 발표한 기자회견 때였다. 대한제분 측은 "공개경쟁입찰의 결과를 알려줄 의무가 없다"고 밝혔지만, 이 입찰이 두 회사가 법적으로 다투는 분기점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강지현 리율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대한제분은 중견기업에 해당하고 세븐브로이는 중소기업에 해당한다"면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중견기업 혹은 대기업과의 거래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원하든 그렇지 않든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변호사는 중소기업 스스로 '바게닝 파워(Bargaining Powerㆍ협상을 유리하게 할 수 있는 힘)'를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곰표 밀맥주 갈등에서 보듯, 중소기업이 분쟁ㆍ갈등의 요소를 처음부터 제거하기 위해선 바게닝 파워를 키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이 힘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책적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한 계약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신화와 불편한 진실이 교차하는 곰표 밀맥주가 보여주는 뼈아픈 함의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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