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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포비아 사회와 포퓰리즘 정치 [성공경제연구소의 한마음 대한민국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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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금 제조업 강국 한국은 탈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고, 초고령사회 한국은 부양할 사람에 비해 부양받을 사람이 너무 빨리 너무 많아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못 살게 될 것이라는 응답이 처음으로 과반을 차지한다. 이제 내리막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은 공포를 느낀다. 한국은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내리막의 공포도 더 크다. 오르막에서만 살아본 기성세대는 그들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르막길만 걸으며 민주화운동의 시대를 산 기성세대는 정치적으로 올바라야 한다고 믿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눈앞의 내리막길에 공포를 느끼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은 ‘PC충(蟲)’이라는 모욕적 이름과 함께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어하는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내리막 포비아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리막 포비아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파고들기 쉬운 정치적 전략이 포퓰리즘이다. 사실 민주주의의 후퇴와 포퓰리즘의 등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포퓰리즘의 등장은 대체로 우파 포퓰리즘의 양상을 띤다. 탈산업화로 인해 중산층이 몰락하고, 극우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당신들이 가난해진 것은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선동하고, 대중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순서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민주주의 선진국이면서 좌파 포퓰리즘이 두드러진 특이한 사례이다. 포퓰리즘은 흔히 ‘대중영합주의’라고 번역되어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대중이 무엇인가를 원하고 정치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먼저 대중의 적을 정해서 이들이 우리의 적이라고 선동하고, 다수의 대중이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그러니 포퓰리즘의 핵심은 대중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둘로 나눠 ‘적’을 정하는 것이다.

한국적 좌파 포퓰리즘에서 적은 상위 10% 부자와, 세계 최고 수준의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탈세하고 있다는 믿음과, 부자들의 선조는 친일파였으리라는 공상과, 필요할 때 언제든 들이대면 약발이 통하는 반일감정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소동은 이에 맞서는 우파 포퓰리즘 시도가 우스꽝스럽게 막을 내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좌파 포퓰리즘에 맞서 뒤늦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우파 포퓰리즘의 적은 학생운동 출신 진보 정치인, 노동, 시민사회, 페미니즘, 북한, 중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설픈 계엄을 시도했다가 탄핵 당하고 정권까지 내어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한국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역량이 아직까지 좌파 포퓰리즘에 훨씬 못 미친다는 증빙이기도 하다.

내리막 포비아에 떠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정치는 혁신과 성장을 통해 오르막길을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탓이라고 선동하면서 그러니 내게 표를 달라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 좌파 포퓰리즘은 친미친일 부자들 탓이라고 하고 우파 포퓰리즘은 북한중국 빨갱이 탓이라고 한다. 내리막길 직전의 최정점에 도달해서 멈춰 선 롤러코스터처럼, 한국은 눈앞에 펼쳐진 내리막길에 두려워하고 있다.

정치가 지금처럼 가는 한 롤러코스터는 실제로 그 내리막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장덕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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