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정책…감정 배제하면 현실과 멀어져"

'경제의 역설: 감정에 흔들리다' 저자 인터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했다. 인간은 이성적 사고로 삶을 조절하고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은 생각보다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감정의 영향을 받아 그릇된 판단과 선택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숫자와 통계를 기반으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여겨지는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그렇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만 믿고 리스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투자에 뛰어들어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행동경제학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이 여러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이성적·비합리적 행동의 원인과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정리한 '경제의 역설: 감정에 흔들리다'를 발간했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대체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보는 전통 경제학과는 달리 인간은 상황에 따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전제하고 예측 불가능한 심리와 본성을 연구한다. 유 원장은 앞서 '판단과 선택', '리더의 오판' 등의 저서를 통해 편향 등으로 일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이성적·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의 사례들을 쉽게 풀어썼다.

이번 책에서 유 원장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메타인지(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자신이 모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지식 기반을 강화해야 비이성적·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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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시장 방향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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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경제를 숫자와 통계 등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제 분야에서 감정은 어떻게 작용하나?

▶경제 관련 제도는 이성적으로 설계되지만 시장은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주가만 해도 정보보다는 심리에 먼저 반응한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내놔도 투자자가 신뢰하지 않으면 주가는 반등하지 않는다. 또 예상보다 조금 나쁜 실적만으로도 주가는 폭락하고, 반대로 막연한 기대만으로 급등하기도 한다. 감정은 시장의 방향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따라서 투자도 경제정책도 감정을 배제하고 설명하면 오히려 현실과 멀어진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감정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한국 시장은 눈치 빠른 투자자가 많고, 장기 보유보다는 단기 대응이 익숙하다. 특히 한국 투자자들은 조급함이 강하다.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쉽게 실망한다. 감정을 조정하기보다는 감정에 반응하는 쪽에 익숙하다. 이로 인해 급등과 급락이 나타나고 유행이 빠르게 바뀐다. 이런 문화는 감정의 진폭을 키운다. 한국 시장은 숫자보다 심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한국 사회 전반의 경쟁적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본다.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감정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감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훨씬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전략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책에 담았다. '왜 나는 항상 고점에 사고, 저점에 팔았을까?'라는 질문을 해본 개인 투자자에게는 좀 더 이성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넘쳐나는 경제 뉴스 속에서 합리적 선택을 고민하는 직장인, 경영자, 창업가들에게도 단순한 경제 이론을 벗어나 사람 중심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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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정책은 이성'·'소통은 감정'이라는 균형 감각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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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성적·합리적으로 리더를 뽑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진행됐다. 과거 콘클라베에서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 악마의 대변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교황 후보자들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분석해 과거 행적과 품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근거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후보자의 신학적·도덕적·행정적 능력을 철저히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은 공식적인 데블스 애드버킷 역할은 사라졌지만, 콘클라베에서는 여전히 토론과 검토 과정이 활발히 이루어져 후보자에 대해 철저하게 평가한다.

성인에 해당되는 추기경에 대해서도 이처럼 철저한 검증을 하는데, 심지어 일반 조직에서 리더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잘못된 리더는 사전에 막아야 한다. 부하 직원이 잘못하면 피해가 적고 징계를 하면 되지만 리더가 잘못하면 조직이 완전히 다 붕괴돼 버린다. 콘클라베처럼 철저하게 걸러내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선거에서는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나?

▶'청년 기본소득', '육아 무상 지원', '반값 주택'처럼 숫자보다 감정에 먼저 다가가는 정책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든 아니든 국민의 절망을 어루만져 주는 언어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이성보다 감정에 초점을 맞춘 공약은 선거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다.

투표에 있어서도 감정이 작용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고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들은 후보의 정책보다는 나랑 닮았는지, 말투가 마음에 드는지, 나를 지켜줄 것 같은지 등 감정적인 부분에 더 많이 반응한다. 또 한 번 선택한 정당이나 후보를 계속 지지하면서 '이번엔 잘하겠지', '이건 전 정권 탓이야'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는 심리가 있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의 선택을 부정하는 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점들은 인간의 뇌가 복잡한 정책보다 간단한 정서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게 감정 중심의 투표다. 실제로 경제활동보다 정치 선택이 더 감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통령 후보들이 올바른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대선 후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감정을 읽되, 감정에 끌려가지 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유권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되, 그것에만 휘둘리는 정책은 결국 실패하게 돼있다. 정책은 이성, 소통은 감정이라는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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