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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칼럼] 대통령 없어서 기업 실적 최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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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칼럼] 대통령 없어서 기업 실적 최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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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우려 달리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
대통령 순방 사라져 경영 집중 분석도
일자리·성장 기업, 경제대통령 뽑아야


박일근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박일근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최악일 줄 알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았던 계엄 이후 내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파고까지 덮치면서 경제 전체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 국정 공백 상황은 걱정을 더 키웠다. 실제로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2%로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 대표 기업들의 1분기 성적표는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아니 오히려 좋아졌다. 삼성전자는 휴대폰(갤럭시 S25)을 많이 판 덕에 79조 원이라는 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현대차 매출도 44조 원을 넘어, 분기 역대 최고치다. 하이브리드차가 효자였다. LG전자도 23조 원에 가까운 매출로, 최대 성과를 냈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무려 7조5,000억 원에 달했다. 방탄소년단(BTS) 등 K팝을 앞세운 하이브의 매출이 5,000억 원을 돌파하고, K뷰티 열풍에 화장품 업체 한국콜마가 최대 실적을 낸 것도 눈에 띈다. 내수 및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고통은 여전하지만 그나마 주력 기업의 ‘어닝서프라이즈’는 고무적이다.

나빠질 줄 알았던 실적이 오히려 개선된 이유는 뭘까. 우선 이런 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더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쌓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 내수의 한계를 극복한 게 주효했다. 물론 아직 관세 전쟁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흥미로운 건 재계 일각에서 국정 공백 상황이 오히려 기업엔 부담을 줄여준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한다는 점이다. 평상시엔 정부와 정치가 군림하며 걸핏하면 그룹 총수를 부르거나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많았는데 탄핵 과정에서 이런 일이 사라진 영향도 없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세일즈 외교를 한다며 해외 순방마다 그룹 총수들을 대동, 뒷말이 많았다. 국가적 행사에 기업도 힘을 보태는 건 마땅하나 경영상 아무런 연관이 없어도 대통령이 ‘협조요청’을 하면 대기업 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달려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말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나. 그리 뛰었지만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혹한 결과(119대 29)는 주지하는 바다. 그런데 대통령 부재로 이런 가욋일이 현저하게 줄어들며 기업들이 경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익 극대화가 지상 과제인 기업들이 무한 탐욕에 빠지는 걸 막고 경제 정의와 약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규제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규제를 만드는 정치 집단과 집행하는 정부의 수준과 실력이 규제를 받는 이들보다 더 낮다면 문제가 생긴다. 3류 정부와 4류 정치가 1류 민간과 2류 기업을 잡으려고 들면 자칫 날개를 꺾고 뒷다리만 잡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제21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 모든 후보가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문화 강국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기업과 K문화는 전 세계로부터 엄지척을 받고 있다. 반면 유독 정치는 국민들이 낯을 들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이러한 정치가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경제와 문화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정치는 경제나 K문화만큼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통해 쌓은 실력이 없다. 지역 기반 양당 구도 속에 아무리 참패해도 2등을 보장받는 고인물이다. 더구나 정치인은 수입할 수도 없다. 국민은 마음 둘 후보가 없어도 누군가 또 찍어야만 한다. 적어도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실제론 죽이는 지도자는 곤란하다. 일자리도 성장도 기업이 만든다. 대통령이 없어야 기업 실적이, 경제가 더 좋아진다는 역설과 우스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시대는 이제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박일근 수석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