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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원수]대통령 재판중지법, 왜 멈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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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원, 트럼프 상호관세 발효에 제동..."권한 남용"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에 놀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두 가지 법률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면 형사재판이 즉각 중단되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이 후보의 대선 출마를 가로막을 뻔했던 허위 사실 공표 조항을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다. ‘전두환 처벌법’처럼 누군가를 응징하려는 취지가 아닌 정반대의 입법은 흔치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 개정은 입법부의 권한이라 법 해석 기관인 사법부는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소관 상임위 등에서 순서대로 처리했다가 대선 투표일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현 정부의 법률안 거부권을 피할 수 있고, 차기 대통령에게 한 치의 공백 없이 곧장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정권 교체기라는 이례적 상황에 대한 이례적 조치라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인데, 정말 빈틈없는 대비책일까. 한마디로 전혀 그렇지 않다.

법안 공포 위한 국무회의부터 충돌 예상

대한민국의 모든 법률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 15일 이내에 공포해야 시행된다. 공포 없이 시행되는 법률은 없다. 헌법상 법률 공포는 대통령의 권한인데, 공포 전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과반 출석에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하고, 법률안에는 국무위원들이 부서한다. 인수위 없이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선 과거 정부의 국무위원으로 법률안을 심의하는데,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이미 반대 입장을 냈다. 다른 국무위원들이 동참한다면 심의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차기 대통령이 집권 초기 사실상 자신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것은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과 부인 관련 특검법을 번번이 거부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가 쌓여 있을 집권 초기에 이런 일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자체가 리더십에 금이 가는 일이다. 대통령이 회피하고 국무총리가 심의할 수 있지만 지금은 총리도 대행의 대행 체제다. 새 총리는 국회 인준이 필요하고, 다른 국무위원을 임명하기까지 수개월이 더 필요하다.

실속 없이 정치적-법적 논란만 키울 것

대통령이 법률안을 공포하지도, 거부권을 행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15일이 지나면 헌법엔 예외적으로 국회의장이 추가 5일 안에 법률을 공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헌법상 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 역사에서 선례가 없다고 한다. 초유의 예외적인 방식으로 법률안을 시행한다면 ‘1인 입법’에 대한 비판이 더 거세질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첫날 시행은 불가능하고, 법 시행까지 첩첩산중인 셈인데 더 큰 문제는 법적 논란이다. 우선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소지가 생긴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여야 할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대선 후보를 도우려던 개정 의도와 달리 되레 곤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 후보의 재판을 맡고 있는 5개의 재판부가 일제히 재판을 5년간 멈출 수 있다.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입법은 불필요하다. 물론 어느 한 곳이 재판의 계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통령 재임 중 형사상 소추를 금지하는 헌법 84조의 해석을 헌법재판소 등에 요구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입법일 것이다. 하지만 헌법의 문제라 법률 시행으로 그런 절차를 막을 순 없다. 오히려 위헌적 시비를 안고 있는 법률 개정 움직임은 헌재의 심리를 착수하거나 또는 압박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실리도, 명분도 모두 놓칠 수 있는 ‘숨겨진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법 개정을 멈춰야 한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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