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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기습 협상제의에 젤렌스키 “정상회담”…주도권 두고 기싸움

헤럴드경제 김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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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기습 협상제의에 젤렌스키 “정상회담”…주도권 두고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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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위치한 대통령 공식 관저 마리인스키 궁전에서 열린 ‘자발적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 사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대궁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발언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EPA·AP]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위치한 대통령 공식 관저 마리인스키 궁전에서 열린 ‘자발적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 사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대궁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발언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EPA·AP]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3년째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상의 불씨를 남기고 있지만 여전히 주도권 겨루기를 이어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협상 제안 카드를 꺼내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하자며 공을 다시 러시아로 넘겼다.

11일(현지시간) 내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경쟁하듯이 협상 제안을 내놓았다.

푸틴 대통령은 새벽 2시에 기습적으로 크렘린궁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 당국과의 협상을 제안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15일 튀르키예에서 직접 푸틴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전날 유럽 4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정상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제재 등을 거론하며 러시아에 30일간 휴전을 요구했다.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여겨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앞서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압박을 느낀 러시아가 마지못해 대화 카드를 꺼내긴 했지만, 이는 고립을 모면하고 시간을 벌기 위한 일종의 ‘기만술’일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30일 휴전안에 대해 언급은 빼놓은 채 제의한 ‘조건 없는 협상’을 우크라이나가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만큼, 평화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색만 내고 전장의 공세는 지속하며 주도권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의 제안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더 강한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영국 BBC 방송은 “푸틴 대통령은 백악관에 ‘나는 평화주의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즉각적인 30일 휴전은 약속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을 계속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더 점령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스탄불 회담 제안을 통해 미국과 유럽 지도자 사이의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도 수락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휴전 확인’이 우선이라며 경계심 섞인 첫 반응을 내놓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즉시 이에 동의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젤렌스키 대통령도 압박받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나는 목요일(15일) 튀르키예에서 푸틴을 기다리겠다. 직접”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제안은 2022년 결렬됐던 튀르키예 협상을 재개하자는 성격이었던 만큼 정상 간 대화를 포함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를 정상회담으로 높여 역제안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역제안 역시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무진부터 정부 고위급까지 세부 논의를 거친 뒤 정상들이 만나 최종 결론에 ‘사인’하는 외교 프로토콜을 고려하면, 장기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 온 적국 정상이 사흘 만에 만나 대화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간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던 푸틴 대통령이 15일 이스탄불에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푸틴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함으로서 협상 의지를 시험하는 한편 외교적 명분을 챙기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WSJ은 “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고 양보는 최소화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말 내내 외교적 카드를 교환하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판돈을 키웠다”고 해설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외교적 벼랑 끝 전술을 새롭게 전개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양측이 모두 완전한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를 요구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대화 테이블이 차려진다면 여러 변수 속에서 협상이 급진전할 가능성은 있다.

협상일로 지목된 15일에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튀르키예를 방문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14∼16일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비공식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