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카카오톡 뉴스 페이지 |
[슬롯]
[디지털포스트(PC사랑)=슬롯] 올해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동안은 전화 기능이 없는 공기계를 들려주고, 같이 휴대폰으로 '포켓몬'을 잡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전화가 되는 휴대폰'을 갖고 있었고, 아이는 주변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아이가 며칠 동안 졸라대기도 했고, 마침 할머니 댁이나 학원에 있을 때 연락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 결국 통신 서비스에 가입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의 첫 휴대폰에 통신 서비스를 연결해 주었다.
미성년자가 카카오톡에 가입화면 어떤 화면을 마주할까?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미성년자가 처음으로 카카오톡에 가입하면 어떤 화면을 마주하게 될까? 첫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카카오톡을 써오고 있어서, 가입 당시의 경험은 나조차도 흐릿하게만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 이름이 아니라 둘째 아이 명의로 직접 카카오톡에 가입해 보기로 했다. 이제 막 8살이 된 아이가 처음 스마트폰 메신저를 접할 때 마주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함과 동시에 불안한 예감도 스쳤다.
“지방 흡입, 지방이식을 중점 진료한다"라는 오픈채팅 광고 |
"지방흡입, 자취라이프"… 초2에게 보여지는 카톡 첫 인상
가입은 매우 간단했다. 만 14세 이상이라는 항목에 체크하지 않자 부모 인증을 요구했고, 휴대폰 번호로 성인 인증을 하자 곧바로 새로운 계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가족들만 등록된 친구 목록과 아직 대화가 하나도 없는 채팅 창에도 광고가 노출됐다. 무엇보다 만 7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 계정임에도 성인과 동일한 기능이 그대로 제공되었다. 하단 탭에는 오픈채팅과 쇼핑 메뉴가 있었고, 이 역시 별다른 제한 없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기능은 단연 오픈채팅이다. 오픈채팅은 불특정 다수와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나이 많은 선배나 성인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채널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는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오픈채팅에서 만난 성인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행, 그루밍 성범죄, 노출 사진 요구 및 협박 등 각종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들이 꾸준히 보도돼 왔다.
7세 아동 오픈채팅에 노출되는 자취 광고 |
그래서 부모로서 이 기능만큼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카카오톡은 만 7세 아동에게도 오픈채팅 탭을 그대로 노출했고, 그 어떤 제약도 없었다.
둘째의 오픈채팅방에 처음 접속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광고는 "지방 흡입, 지방이식을 중점 진료한다"라는 한 병원의 홍보였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이미지가 함께 노출된 것도 썩 달갑지 않았다. 플랫폼이 보여주는 콘텐츠와 추천 알고리즘은 명백히 성인 사용자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었고, 아이에게는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됐다. 더불어, 외모에 대한 왜곡된 기준과 고정관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광고 아래로는 '자취정보', '집 구하는 법' 같은 주제의 채팅방들이 추천 콘텐츠로 떠 있었다. 어쩌면 아이가 얻게 된 전화번호의 이전 사용자가 외모 관리와 자취 생활에 관심 있는 대학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험 삼아 제일 위에 있던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봤다. 입장하고 채팅하는 과정에서 만 7세 어린이의 나이를 고려한 어떠한 기능 상의 제한도 없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 정책 변경 |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카카오의 "청소년 보호 정책"
여러 언론사 기사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4월 30일부터 청소년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내용을 정리하면, 법정대리인의 요청만으로도 미성년 자녀의 오픈채팅 접근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보호 조치 기간도 기존 180일에서 1년으로 연장됐다. 신청 절차는 간소화되어 휴대폰 본인인증만으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정책을 들여다보면, 본질적인 변화라기보다는 형식을 조금 다듬은 수준에 가깝다. 사실 이 기능들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것들이다. 다만 과거에는 인감도장까지 받는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는데, 이번에는 서명과 인증으로 대체한 것이다. 보호 조치 기간 역시 실질적인 조치라기보다는 단순한 연장에 불과하다.
또, 여전히 부모는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공문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성년자가 카톡에 가입할 때는 가족 관계의 증명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청소년보호 조치를 앞두고서는 증명하라는 사실 자체가 플랫폼의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이용을 장려하는 데는 장벽을 낮추고, 제한에는 장벽을 높인다. 이는 보호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플랫폼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막을 수 없다"라는 말 뒤에 숨은 '책임' - 가정과 사회의 공동 과제
오픈채팅을 무조건 전면 차단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첫째만 해도, 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까지 참여한 단체방이 오픈채팅으로 개설돼 있다.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 기관에서도 공지사항이나 과제 전달을 오픈채팅을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아도 되고, 프로필 사진을 노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유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편의보다 위험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플랫폼 기업이 지배하는 AI 시대, "어차피 막을 수 없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손을 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오픈채팅을 매개로 발생한 성범죄 사례들을 떠올리면, 특히 아이의 호기심을 노린 그루밍 범죄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본능적으로 호기심을 느끼고, 범죄자들은 그 틈을 교묘히 파고든다.
투명한 소통과 두려움 없는 관계의 힘이 강력한 예방책
부모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자녀와 생각과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는 꼭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을 봤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를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그 어떤 기술적 조치보다 강력한 예방책이다.
하지만 이 모든 대화가 가능해지기 전, 즉 아직 대화의 수준이 맞지 않는 나이라면, 불필요한 노출은 사회적으로 차단해 줄 필요가 있다. 부모 한 명, 가정 하나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노출 자체를 최소화하는 환경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서 교육과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초등학생의 오픈채팅 이용을 금지해달라는 국회 전자청원에 약 1만 9천 명이 서명했다. 사회적 요구는 분명하다.
카카오는 이러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기존 기능을 포장만 바꿔 다시 내놓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디지털 환경 전체를 구조적으로 설계하는 사회적 책임이다. 기술을 만드는 쪽이 먼저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야 한다. 부모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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