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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왜 비싸졌을까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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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왜 비싸졌을까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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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붉은색이 덜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사과밭 바닥에 햇빛 반사판 구실을 하는 은박 필름을 깔아서 착색 효과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폐기물 양산을 우려해 필름을 깔지 않은 경북 예천 사과밭에서 필자가 일하는 모습. 필자 제공

사과의 붉은색이 덜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사과밭 바닥에 햇빛 반사판 구실을 하는 은박 필름을 깔아서 착색 효과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폐기물 양산을 우려해 필름을 깔지 않은 경북 예천 사과밭에서 필자가 일하는 모습. 필자 제공




한태훈 | 예천 귀농 사과 농부





산불이 번지고 있다는 경북 안동에서 내가 사는 예천군 은풍면까지는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인데도 하늘에는 재가 날아다니고 매캐한 탄내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불이 시작된 의성과 불이 옮겨 온 안동은 예천의 이웃인데다 이미 2년 전 2023년 7월 대폭우로 산이 무너지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자연재해의 아픔을 경험해봤기에 불이 빨리 진화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하지만 절망적이었다. 이즈음의 바람이 매섭다는 것을 농사짓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바람이 쉬지 않고 부는데다 비가 온 지 너무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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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산불이 영양, 청송, 영덕까지 번졌다. 예보에는 오전에 비가 올 거라 했지만 오지 않았고, 산림청장은 저녁에 예보된 비가 1~2㎜ 정도라 진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밤사이 내린 그 1~2㎜의 비가 화마를 격퇴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결국 주불을 잡고 진화에 성공했다.



불이 잡히고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이 이렇게 역대 최악으로 번진 것은 기후변화의 영향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에서 산불이 났기 때문에 올해 사과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해 보이고, 이미 사과값이 오르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공판장에 가서 시세를 보니 사실이었다. 3월 말부터 사과가 귀해지는 시기임을 고려해도 사과값은 예전보다 큰 폭으로 상승 중이다. 다른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과 저장고가 전부 불탄 곳이 수두룩하단다. 꽃눈에 재가 앉아 사과가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과수원이 모두 불타버렸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과는 묘목을 심고 3년은 지나야 수확한다. 3년간 수확량이 줄어들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이다.



최근 몇년간 사과값이 비쌌으니 재미 좀 봤겠다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사과값이 올랐다는 것은 사과를 많이 수확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생산량이 확연히 줄어들었으니, 사과값이 올랐다고 농민의 소득이 늘어나진 않는다. 날씨가 사과 농사를 매해 망치고 있고 이 피해는 사과값으로 드러난다.



사과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건 2020년이다. 그해부터 날씨가 이상하리만큼 좋지 않았다. 6월 중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8월까지 내렸다. 약 두달간 매일같이 비가 내린 것이다. 사과는 탄저병에 약한데 탄저는 비를 타고 퍼진다. 사과에 까만 점이 한두개 찍히기 시작하더니 과수원 전체로 까만 점이 퍼지고, 까만 점은 점점 더 커져 바둑알만 해졌다. 따 내서 버리고 버려도 계속 번졌다. 생산량이 전년에 견줘 반토막 났다. 내가 농사를 못 지어서 그런가? 아니었다. 모든 농가가 그랬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사과 수확량이 급감해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연일 기사가 나왔다.



잦은 폭우로 탄저병이 생긴 사과. 필자 제공

잦은 폭우로 탄저병이 생긴 사과. 필자 제공


2025년 3월. 분명히 2월 말까지만 해도 영상이었는데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폭설이 내렸고 산불이 났다. 4월 꽃눈이 드러나자 갑자기 추워졌다. 꽃이 어그러진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아무래도 올해도 틀린 것 같다. 맛있는 사과를 자주 먹고 싶다면 날씨가 이상해지는 것을 늦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사과를 고객에게 보낼 때 ‘맛있는 사과 자주 드시고 싶죠? 그러면 꼭 날씨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야 합니다’라고 적은 안내문을 동봉한다.



서울에서 나는 택배 기사였다. 비가 오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다. 하루 종일 비와 땀에 젖어 일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농사를 지어보니 비가 때에 맞춰 적당히 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날마다 날씨 예보를 본다. 날씨가 예전과 다를 때면 걱정한다. 날씨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과 농부는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때 행복하다.



2023년 폭우 때 마을 전체 사과원이 떠내려간 모습. 필자 제공

2023년 폭우 때 마을 전체 사과원이 떠내려간 모습. 필자 제공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노력하면 기후변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한다. 우리 사과밭엔 사과 착색을 위해 까는 은박 필름을 한번도 깐 적이 없다. 사과는 시간이 되면 알아서 익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익은 사과도 맛있다. 그런데 은박 필름은 폐기물이 된다. 3㎏ 상품은 모든 포장재가 재생 종이이다. 방제는 관행 대비 절반만 한다. 꿀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사과꽃을 떨어뜨려 열매 개수를 조절하는 낙화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분리 배출은 철저하게 하고, 강아지와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다. 이런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거라도 해야 지구에 덜 미안하다. 지구는 모두의 것이니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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