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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재명 ‘만독불침’의 수호신인가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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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재명 ‘만독불침’의 수호신인가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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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 단양8경 편’에 나선 지난 4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서부시장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 단양8경 편’에 나선 지난 4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서부시장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일생 동안 보수만 학살하다 가는구나.”



12·3 비상계엄령 나흘 뒤인 지난해 12월7일 전 국민의힘 의원 김웅이 대통령 윤석열을 향해 한 말이다.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적폐청산 수사를 통해 보수를 죽이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선 비상계엄 선포로 보수를 죽이느냐는 비판이다. 나는 ‘보수 학살’ 표현이 가슴에 강하게 와닿는 게 있어 한달 전 이 주제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윤석열의 ‘보수 죽이기’에 국민의힘이 져야 할 책임을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책임을 묻긴 했지만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같은 수준에 놓진 않았다. 윤석열의 정체성이 그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사악함과 우둔함이 혼합된 윤석열의 ‘괴물성’은 뜻밖에도 희극적이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가 자신을 파면한 것에 대해 “둔기로 얻어맞은 그런 느낌이었다”고 했다나. 탄핵이 인용될 줄은 전혀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계몽용’ 계엄을 주장할 때엔 “살기 위해서 별짓을 다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모든 말을 상황에 따라 지어낸다는 말인가? 이 세상에서 65년을 산 사람이 마치 딴 세상에서 온 것처럼 전혀 엉뚱한 말을 해댄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곤 하지만, 저런 판단력으로 대통령으로 일했다는 게 무섭지 않은가?



윤석열의 집권을 분노와 살기로 바라본 사람들 역시 무서웠다. 그의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대통령 전용기의 추락’을 빌고 ‘경찰의 무기 사용’을 권하는 성직자들이 나타났고, 야권 진영, 아니 온 나라가 그런 증오와 혐오가 들끓는 살벌한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일부 영향력 있는 원로 지식인들조차 특정 진영의 지도자에게 위대하다는 찬사를 바치면서도 화해와 통합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양극화된 진영 전쟁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자신의 과오와 문제에 대해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윤석열은?”이라는 한마디로 족했다. 미진하면 “그럼 김건희는?”이라고 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이재명은 경기도지사 시절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라고 호언했다. 만독불침은 ‘어떠한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그건 그에게 바쳐진 찬사처럼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만독불침을 가능케 한 수호신은 하늘이 아니라 윤석열이었다.



윤석열을 겨냥한 ‘증오 마케팅’은 대성공이었다. 유권자들이 식상할 겨를이 없었다. 윤석열 부부가 늘 신선한 재료를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적폐청산 수사와 비상계엄 선포만으로 보수를 학살한 게 아니었다. 그는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 ‘권력의 사유화’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면서 그걸 정권과 여당의 정치적 문화로 고착시킴으로써 보수를 확인사살했다. 그는 김건희의 정치 개입을 용인하고 사실상 장려함으로써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야매 정치’가 기승을 부리게 만들었고, 이게 계엄으로 나아가는 배경이 되었다.



이 모든 걸 방관했던 국민의힘은 계엄에 대한 윤석열의 책임을 물었던 당내 인사들을 탄압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피해자라기보다는 윤석열과 같은 수준의 한통속이 아닌가. 문제의 핵심은 계엄을 저질러 파면당한 윤석열과의 관계 설정인데, 국민의힘은 사실상 윤석열을 껴안는 길을 택했다. 같이 죽겠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러면서 대선엔 왜 기대를 거는가? 국민의힘이 이재명과 민주당을 향해 ‘나라를 망칠 세력’이라고 아무리 비난해봐야 소용없다. “너희들보다 더 망치겠느냐?”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직을 미친 짓 하나로 날려버린 윤석열에게 몰매와 저주를 퍼부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왜 그를 모시지 못해 안달할까? 의리? 아니다. 그건 노예근성이다. 권력에 맹종하던 두뇌가 몸에 각인시킨 버릇이다.



대선은 시늉일 뿐 친윤 의원들의 주된 관심은 당권과 의원직이라는 기득권 보호일 뿐이라는 시각이 유력하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그들 역시 윤석열처럼 딴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쇼’를 보라. 국민의힘은 어떻게 하는 게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그것조차 전혀 모르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전 대구시장 홍준표가 최후의 순간에 옳은 말을 했다. “윤석열은 나라 망치고 이제 당도 망치고 있다.” 그걸 이제서야 알았다는 게 놀랍다. 윤석열의 광기 어린 자해를 지적하고 비판했던 한동훈을 그간 ‘배신자’로 모욕했던 것에 대한 사과를 곁들였더라면 더욱 좋았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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