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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풀려난 성매매 피해여성들.."이젠 살아갈 용기 얻어"

이데일리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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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풀려난 성매매 피해여성들.."이젠 살아갈 용기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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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성매매피해 자활지원센터 '모두모여이루자'
성매매집결지 유입되면 빚의 수렁에 빠져
자물쇄 없지만 CCTV로 일거수 촘촘 감시
미래 꿈꿀 수 없는 상황..돈 모을 생각도 못해
족쇄 풀린 200여명 중 60여명만 지자체 자활 지원
센터서 '성매매 하지 않을 권리' 찾으며 회복 중
[수원=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2021년 5월 31일 수원역 인근 이중으로 즐비했던 성매매집결지가 ‘자진폐쇄’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거기에 있는 여성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9일 수원 성매매피해 자활지원센터에서 만난 마소현(45) 모모이(모두모여이루자)센터장은 “우리 센터에 와서 자립한 경우도 있고 지인들을 찾아 떠난 이들도 있다.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고 전했다.

경기 수원의 성매매피해 자활지원센터 모모이의 마소현 센터장이 2021년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 이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경기 수원의 성매매피해 자활지원센터 모모이의 마소현 센터장이 2021년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 이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4년 전 5월 30일 밤은 폐쇄 전날이었음에도 131개소 200여명의 여성들이 평소처럼 모두 일했다. 그런데 포주이자 건물주였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고 전기를 모두 끊은 채 문을 걸어 잠갔다. 퇴직금도 없었다. 포주들은 선불금 등 받을 돈이 더 많은데도 놔주는 거라며 시혜를 내리듯 얘기했다. 짧게는 수년을, 길게는 20여년을 그곳에서 지내온 여성들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녀들이 성매매를 시작한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어떤 이는 홀어머니를, 또 다른 이는 홀아버지, 어린 동생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경력 무관, 나이 무관’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이 컸다고 털어놨다. 거기에 숙식까지 제공해준다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 포주를 엄마, 이모, 삼촌이라 불렀지만 실상은 가족이 아니었다. 지역을 옮길 때마다 선불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거기에 방세, 성구매자를 위한 콘돔과 휴지, 음료수, 라이터 등과 같은 물품과 방세, 공과금 등 성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제반비용 또한 오롯이 부과됐다. 또 몸이 아파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하루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벌금으로 매겨졌고 지각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매출이 100만원이라면 일을 못하는 날엔 100만원의 빚이 쌓이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하루 10명의 성구매자를 만나도 그녀에게 남는 돈은 1만~2만원이 전부였다. 골목마다 촘촘하게 깔린 CCTV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과거처럼 창살 안에 갇혀 있지 않았지만 더한 족쇄에 다리가 있어도 걸어나올 수 없었다고 그녀들은 토로했다.

마소현 센터장은 “성매매집결지에 한번 유입되면 보이지 않는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며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언제 어디서 구매자를 마주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지도를 모모이 공동작업장에서 퀼트로 제작했다. 마소현 모모이 센터장은 이 작품이 수원시청 등에서 전시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사진=이지현 기자)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지도를 모모이 공동작업장에서 퀼트로 제작했다. 마소현 모모이 센터장은 이 작품이 수원시청 등에서 전시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사진=이지현 기자)


집결지 여성 대부분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황에 돈을 모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여성은 집결지를 떠나올 때 수중에 5만원이 전부였을 정도다. 이런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지자체였다. 관할 지자체인 수원시는 조례를 통해 이들에게 대상으로 생계비와 주거비, 직업훈련비 등 총 760만원을 1년에 한해 지원해 현재까지 66명이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자활지원사업도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고등검정고시를 준비해 학력을 취득했고, 어떤 이는 헤어자격증, 한식조리기능사, 제과·제빵기능사에 도전해 성과를 내고 있다. 다른 이들은 공동작업장에서 함께 재봉틀을 돌리며 몸도 마음도 회복할 힘을 기르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면 최저임금(시간당 1만 30원)에도 못 미치는 시간당 1만원을 번다. 월 100시간 이상, 최대 150시간까지 참여할 수 있다. 최대 150만원까지만 월급으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매일 이기는 건 더는 성매매하지 않을 권리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원하는 일을 찾아 떠난 후 최근 자활센터를 다시 찾은 한 여성은 “성매매를 하지 않고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됐다”며 “진즉 알았더라면 더 빨리 나왔을 텐데”라는 말을 남겼다.

모모이센터에서 자활을 위해 노력 중인 여성들의 캘리그라피가 모모이센터 작업장으로 가는 벽면에 전시돼 있다. 엑자에는 ‘그곳에는 인권이 없었다’, ‘나와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더라’, ‘숨지 않고 세상을 살다’ 등이 쓰여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모모이센터에서 자활을 위해 노력 중인 여성들의 캘리그라피가 모모이센터 작업장으로 가는 벽면에 전시돼 있다. 엑자에는 ‘그곳에는 인권이 없었다’, ‘나와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더라’, ‘숨지 않고 세상을 살다’ 등이 쓰여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현재 전국에 13개의 자활지원센터가 이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늘 후순위다. 긴급주거지원 대상도 가정폭력, 성폭력 대상은 포함되지만, 성매매 여성은 제외다. 마 센터장은 “수원시의 주거지원을 받고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겼다고 하더라”며 “안정적 주거가 있다면 자활을 졸업해도 다른 일을 시도할 힘을 낼 수 있다.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남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은 “피해 여성 등이 정신적·신체적 피해 외에도 사회적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종사자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며 “성매매 피해자들이 사회복귀의 의지를 갖고 자활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 등과 연계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