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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정치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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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도부를 향해 "무소속을 당 후보 만들려 불법부당 수단 동원, 중단하라"며 입장을 밝히자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발언한 뒤 의총장을 떠나고 있다. 뉴스1 |
후보 교체 시도의 분수령은 9일 오전 11시 50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였다. “단일화 협상 의지가 있다”는 취지의 김 후보 측 물밑 접촉에 당 지도부는 김 후보의 전향적 입장 변화를 기대하며 의총 개최시간을 1시간 가까이 미루고 대기했다. 하지만 후보 선출 뒤 의총에 처음 참석한 김 후보는 “강제 단일화엔 응할 수 없다”며 최후통첩을 하고 떠나버렸다. 격앙된 당 지도부가 후보 교체를 포함한 ‘플랜B’ 카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변수는 있었다. 김 후보 측이 법원에 낸 ‘대선 후보자 지위 인정’ 등 두 건의 가처분 신청 중 하나만 인용되더라도 당 지도부는 김 후보를 대선후보로 인정하거나, 후보 등록 자체를 포기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5시 30분 서울남부지법이 ‘정당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둘 다 기각 결정을 하면서 후보 교체를 위한 법적 리스크가 사라졌다.
이에 코너에 몰린 김 후보 측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며 한 전 총리 측과 두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해 결렬됐다. 같은 날 밤 10시에 열린 의총에서 참석자들은 ‘후보 교체’를 포함한 모든 결정 권한을 비대위에 위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재석 의원 64명 가운데 60명이 찬성했다. 이에 국민의힘 지도부는 10일 0시, 비대위와 선관위를 동시 소집해 김 후보의 대선후보 지위를 박탈하고 한 전 총리를 단일 후보로 뽑으려는 후보 교체 작업에 착수했다.
새벽 2시 30분, 당 선관위는 김 후보의 선출을 공식 취소하고 ‘후보자 등록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등록 시한은 같은 날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단 한 시간이었다. 이 무렵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 전 총리가 유일하게 후보 신청을 했다. 등록 공고 가능성에 대비해 김 후보 측도 30여개의 제출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공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접수를 못 했다. 비대위 내부에서도 “한 후보 이외의 등록 가능성을 사실상 원천 차단하는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야밤의 정치 쿠데타”란 김 후보 반발을 당 지도부가 자초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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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이 거부한 후보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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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권성동 원내대표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의힘은 1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당원 대상 ARS 투표를 진행했다. 문항은 ‘한덕수 후보로 단일화에 찬성하십니까’였다. 반대 의견을 누르면 ‘정말 반대하느냐’고 또 한 번 물었다고 한다. 결과는 반대가 과반으로, 부결이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이날 밤 11시 20분 국회에서 후보 교체 안건 부결을 공식 발표하며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너무 안타깝지만, 이 또한 제 부족함 때문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후보’에 반대한 당심 결과는 이례적이었다. 당 지도부가 8~9일 당원과 국민을 상대로 물은 ‘김문수 대 한덕수’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한 전 총리가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에선 ▶후보 교체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훼손 ▶쌍권(권영세ㆍ권성동)에 반대하는 친윤계의 분화 ▶단일화에 대한 피로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10일 날이 밝자 후보 교체 과정에 대한 당내 반발이 계파를 불문하고 터져 나왔다. 김 후보의 경선 경쟁자들이 “북한도 이렇게는 안 한다”(한동훈), “한밤중 후보 약탈 교체로 파이널 자폭을 했다”(홍준표), “막장극을 자행했다”(안철수)는 등 당 지도부를 맹공했다. 친한동훈계 의원 16명이 성명서를 낸데 이어, 비대위에 후보 교체 전권을 위임했던 옛 친윤계에서도 “안타깝고 부끄럽다”(박대출 의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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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이미 대선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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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치권 해석은 다양하다. 단순히 대선후보 자리를 둘러싼 충돌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선 이후 당권 장악을 위한 세력 간 다툼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 후보를 중심으로 한 우파 강경 세력과 한 전 총리를 앞세워 당 영향력을 이어가려는 옛 친윤계가 충돌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 승리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쥔 당권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라고 했다.
한 전 총리 추대 계획이 틀어지면서 당 지도부와 방향을 달리하는 옛 친윤계의 분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이다. 단일화 찬성 입장이던 김기현ㆍ나경원ㆍ윤상현 등은 단일화 협상이 어려움을 겪자 앞장서 “김 후보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며 ‘쌍권’ 지도부와 의견 차이를 보였다.
특히 10일 당 지도부의 무리한 후보 교체로 원성이 커지자 나 의원을 비롯해 이종배ㆍ박대출ㆍ이만희ㆍ권영진ㆍ배준영ㆍ장동혁ㆍ강민국 의원 등은 김ㆍ한 후보를 차례로 찾아 막바지 단일화 협상을 타진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경선 과정에서 ‘쌍권’ 등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중립 성향의 영남 중진 의원은 “단일화 협상이 여론의 질타를 받자 차기 당권 경쟁 주자들이 당 지도부와 차별화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친한동훈계는 권성동 원내대표를 타깃으로 삼았다. 권 원내대표가 직을 유지한다면 대선 이후 전당대회를 개최하거나 비대위 체제를 이어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현진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김 후보에게 ‘알량한 후보자리 지키기 한심하다’며 단식과 새벽 퇴출까지 주도했던 게 권 원내대표”라고 썼다. 당 선대위 합류를 수락하지 않은 한동훈 전 대표는 경선 패배 직후부터 ‘당원 배가 운동’을 추진하며 차기 당권 준비에 나선 상태다.
김기정ㆍ이창훈ㆍ장서윤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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