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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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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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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해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50대 ㄱ씨가 지난달 17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해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50대 ㄱ씨가 지난달 17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혁준 | 전국팀장



이번 한겨레 프리즘 제목은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가 1885년에 쓴 단편소설에서 따왔다. 소설엔 어린 쌍둥이 자매 이야기가 나온다. 자매는 갓난아기였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이웃집 부인 품에서 자랐다.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어느 날, 부인과 어린 자매는 구두를 맞추기 위해 구두 가게를 찾았고, 구두수선공인 한 남자가 이 자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소설의 주인공인 천사 미하일로, 하느님 명을 따르지 않은 벌을 받아 지상에 살고 있었다. 6년 전, 하느님은 미하일에게 자매 엄마의 영혼을 데려오라고 했으나, 자매의 엄마는 “이대로 죽으면 고아가 될 아이들은 어쩌냐”며 슬피 울었다. 미하일은 차마 영혼을 거두지 못했고, 그 이유로 벌을 받아야 했다.



하느님은 미하일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땅에서 답을 찾으라고도 했다. 부인과 자매의 모습을 본 미하일은 미소를 지었다. 답을 찾았다는 의미였다. 그건 사랑이었다. 나와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친아이처럼 키우는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이타적인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이 단편이 요즘 자주 떠오르는 건, 최근 일어난 사건들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경기 용인시에서 50대 남성이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대와 20대 두 딸 등 가족 5명을 살해했다. 가해자는 자식, 남편, 아빠였다. 피해자들은 부모, 아내, 딸이었다. 가해자는 가족에게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음료에 타 마시게 한 뒤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는 경찰에게 “아파트 분양 사업을 하다 사기 분양으로 고소당해 엄청난 빚을 지고 민사소송까지 당하는 처지에 몰렸다”고 했다. 그를 면담한 프로파일러는 “사업 실패로 극한 상황에 놓이자 가족이 받을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모두 같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27일엔 경기 광주시에서 30대 여성과 6개월 된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 휴대전화에선 ‘아기를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메모가 있었다고 한다. 아들은 몇달 전 난치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여성이 아들을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가족 구성원이 부모나 자식을 살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언론은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으로 처리하지만, 명백한 범죄다. 동정의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일가족 5명을 살해한 남성은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저항할 수 없게 한 뒤 일가족을 살해했다. 그는 사업 실패로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상황을 가족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난치병 진단을 받은 아들을 살해한 여성은 자신을 지킬 힘조차 없는 아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아들을 스스로 삶과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부속물처럼 여겼다.



내가 없으면 가족이 힘들게 살게 될 거라는 건 착각이다. 오히려 부모 때문에 아이가 망가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자신의 욕망을 자식으로 이루려는 부모는 자식을 망치게 한다. 특정 직업을 갖기 위해 특정 시험에 몇수를 해서라도 통과해야 한다고 강요한 부모가, 대학생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지 우리는 보게 됐다. 심리학자들과 뇌과학자들은 많은 사이코패스가 어릴 적 부모의 학대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다시 톨스토이 단편으로 돌아가보자.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신의 소유물을 향한 게 아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다. 가족은 내 소유물이 아니고, 나와 다른 인격체다. 그들 삶은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일가족 살해, 가족 동반 자살 같은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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