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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원 일자리의 소멸 [뉴노멀-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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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원 일자리의 소멸 [뉴노멀-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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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3분기 성장률 4.3%…강한 소비로 전망 웃돌아
인공지능(AI)이 이끄는 기술 발전의 급류 속에서 제트(Z)세대는 직업관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인공지능(AI)이 이끄는 기술 발전의 급류 속에서 제트(Z)세대는 직업관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권순우 | 더밀크 서던플래닛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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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불과 2년 만에 쓸모없는 직업으로 전락했다.”



인공지능(AI)의 비약적인 발전이 미국의 구직시장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특히 기술 직군의 명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고 있고, 이에 맞는 역량을 갖추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직함도 낯설고 요구 수준도 높아져 구직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 인재로 각광받았던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에는 연봉 20만달러(약 3억원)를 넘나들며 기술 업계의 블루칩으로 주목받았지만, 인공지능 모델의 고도화와 기업들의 내재화된 인공지능 역량으로 인해 이 직업은 2025년 현재 사실상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MS)가 31개국 3만여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향후 채용 전망에서 최하위에 그쳤다. 반면, 인공지능 트레이너나 인공지능 보안 전문가, 데이터 전문가 등 좀 더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직무군이 새로운 핵심 인재로 떠오르고 있다.



직함의 양적 증가는 더욱 뚜렷하다. ‘인공지능’, ‘데이터’, ‘머신러닝’에 ‘엔지니어’, ‘아키텍트’, ‘디자이너’ 등의 직함이 결합하고 있다. 직업의 이름만 보아서는 실제 역할과 책임을 가늠하기 어렵다. 링크트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새 새로운 직업을 얻은 미국인의 20%가 2000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당연한 흐름이지만 그 속도가 산업이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설 정도라는 점이 문제다.



이러한 변화의 그늘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제트(Z)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특히 기술 분야에 도전하는 미국 대졸자들은 줄어드는 초급 채용과 생성형 인공지능을 선호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급기야 “우리 경쟁자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라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취업 플랫폼 핸드셰이크 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 도구에 익숙한 대학 졸업 예정자 중 62%가 인공지능의 등장 때문에 자신의 취업 전망에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컴퓨터 과학 전공자들은 28%가 현 경제 상황에서 경력 시작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18%에서 10%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기술 발전의 급류 속에서 제트세대는 직업관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미국의 공식 학적정보기관인 국립학생정보센터에 따르면, 2020년 이후 4년제 대학 등록률은 정체됐지만 직업 중심 커뮤니티 칼리지의 학생 수는 약 16%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기술·서비스 중개 플랫폼 섬택의 보고서 결과인데, 제트세대의 55%가 기술직 종사를 고려한다고 한다.



이러한 직업관 전환의 배경에는 경제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 부담과 학위 가치에 대한 회의감이 젊은 세대를 실용적 경로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직업 안정성 또한 기술직 선호의 핵심 동인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사무직 대체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손과 현장 경험이 필요한 기술직은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미국 내에서 용접공이 40만명 부족하다는 통계는 이러한 수요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조용히 확산하고 있는 ‘기술직 르네상스’는 한국의 교육과 노동의 미래를 재구성할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대학만이 정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전문성과 실무 숙련도를 인정하는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 정책 입안자와 교육기관 역시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다양한 경로의 직업교육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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