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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안 돼 끝난 국힘 후보 강제 교체 시도…한덕수 8일 만에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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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서울 국회 사랑재 앞에서 김문수 후보와 후보 단일화 관련 회동을 마치고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서울 국회 사랑재 앞에서 김문수 후보와 후보 단일화 관련 회동을 마치고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지도부가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된 김문수 대통령 후보를 후보직에서 끌어내리고 한덕수 후보를 당의 대선 후보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이런 시도가 10일 당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덕수 대통령 후보(왼쪽)와 김문수 대통령 후보.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후보(왼쪽)와 김문수 대통령 후보. 연합뉴스


당 지도부가 심야에 전광석화로 밀어붙인 ‘강제 후보 교체’에 대한 당 안팎의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당심’마저 돌아선 것이다. 김문수 후보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자격은 곧장 회복됐고, 무리한 후보 교체를 밀어붙였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 애초 국민의힘은 ‘범보수 빅텐트’를 통한 대선 승리를 강조해왔지만, 후보 강제 교체 시도로 당내 자중지란만 키우고 상처만 남겼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밤 국회에서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원투표 부결로 비대위 관련 결정이 무효가 됐다”며 “김 후보의 대통령 후보 자격이 즉시 회복됐고, 내일 공식 후보 등록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전날 밤 김 후보와 한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직후 비대위와 선거관리위원회 회의를 잇달아 열어 김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을 취소하고 한 후보를 새로운 당의 후보로 지명하기 위한 절차를 밀어붙였으나,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이뤄진 당원 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권 위원장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건 너무 안타깝지만 제 부족함 때문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절차와 과정의 혼란으로 당원과 국민에게 심려 끼친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권 위원장은 물론 권성동 원내대표와 이양수 사무총장 등도 후보 등록 등 후속 실무를 끝난 뒤 물러난다는 계획이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한 후보를 새로운 당의 후보로 지명하는 안건이 당원 투표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해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근소한 차이”라고만 밝혔다. 이런 결과는 ‘후보 등록 전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가 단 4시간 만에 절차적 정당성까지 훼손하면서 대선 후보를 강제 교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당원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주류가 마음먹으면 누구든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당원들이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10일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당 지도부 주도의 사상 초유 대선 후보 교체 강행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10일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당 지도부 주도의 사상 초유 대선 후보 교체 강행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날 김 후보와 한 후보 간 두 차례 단일화 실무협상이 무산되자 곧바로 이날 자정 비상대책위원회와 당 선거관리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김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을 취소하고, 한 후보를 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후보 교체 사유는 △단일화 약속 파기와 당원 기만행위 △단일화 촉구하는 당원 요구 거부 △전국위 개최 허용, 김 후보자 대통령 후보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기각 등 법적문제 해소 및 절차적 정당성 확보 △더 경쟁력 있는 인물이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는 점 등 4가지였다. 사실상 단일화 무산의 책임을 김 후보 쪽에 돌리며, 한 후보가 당의 대선 후보가 돼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당 지도부가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후보자 선거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단 한 시간 안에 구비 서류 32종을 제출하라고 공고한 건, 사실상 한 후보를 유일 후보로 만들기 위해 ‘짜고친 고스톱’이란 말들이 나왔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등록한 한덕수 후보가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들어선 가운데, 당사 앞에서 김문수 후보 지지자 등이 한 후보의 차량과 당사 건물을 향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등록한 한덕수 후보가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들어선 가운데, 당사 앞에서 김문수 후보 지지자 등이 한 후보의 차량과 당사 건물을 향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당 지도부가 이런 이유로 후보 교체를 밀어붙이는 데 대해 당내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을 비롯해 다수의 의원들이 비판적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북한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억지로 한덕수 후보를 국민의힘 후보로 내면 국민들로부터 표를 얼마나 받을 것 같냐. 아직도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그 추종자들에 휘둘리는 당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한X이 한밤중이 계엄으로 자폭하더니, 두X이 한밤중 후보 약탈교체로 파이널 자폭을 하는구나. 미쳐도 좀 곱게 미쳐라”고 했다. 홍 전 시장은 이날 미국으로 출국하는 길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를 만나 “(국민의힘의 패착으로) 이번 대선판은 양자 구도로 갈 테니 이재명 대 이준석 두 사람이 잘 한번 해보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당 지도부의 만행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다를바 없다”며 “막장의 정치 쿠데타이자 절망적 자해행위, 주식 작전의 통정매매처럼,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이루어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파괴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안 의원은 당 지도부의 후보 교체 시도를 “민주 정당에서는 있을 수 없는, 당권을 염두에 둔 엽기적 권력 쟁취 시도”라며 “지도부가 그렇게 한덕수 후보의 경쟁력을 믿는다면 한덕수 후보는 지도부와 친윤 세력과 함께 떠나시라”고도 했다.



당내 의원들도 “후보 신청 시간을 새벽 3시부터 1시간으로 제한한 건 심각한 절차적 하자”(박정훈)라며 “수십억 들여 경선은 무엇하려 했나. 말장난 서커스였나”(배현진), “명백한 정당민주주의 파괴이자 수십만 당원과 국민을 기만하는 대국민 사기극”(조경태)이라고 성토했고, 박정하 의원의 경우 “한덕수 후보의 선거를 도당위원장으로서 지휘할 자신이 없다”며 “강원도당위원장 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덕수 후보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후보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내 반발이 커지자 한덕수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기기 위해서라면 김덕수·홍덕수·안덕수·나덕수 그 어떤 덕수라도 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역풍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후보 지명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것처럼 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10일 0시부터 11일 0시까지 꼬박 24시간 동안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듯한 한 후보는 당원 투표가 부결된 뒤 “국민과 당원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하차했다. 대선 출마 선언 8일 만에, 지도부만 바라보다 불명예 퇴장을 하게 된 것이다.



영남의 한 재선 의원은 “예상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 3시부터 1시간 동안 기습 후보등록을 받고, 한 후보로 교체한다는 걸 누가 납득하겠냐”며 “단일화 효과는커녕 대선 시작도 전에 분열만 심해졌다. 이게 국민의힘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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