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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소수자 또한 교회의 일부…보듬는 교황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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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소수자 또한 교회의 일부…보듬는 교황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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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인근에서 만난 가톨릭 최대 퀴어 인권 그룹인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GNRC)의 공동의장 메리앤 더디버크. 사진 장예지 특파원

지난 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인근에서 만난 가톨릭 최대 퀴어 인권 그룹인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GNRC)의 공동의장 메리앤 더디버크. 사진 장예지 특파원


2천여년 가톨릭 역사에서 동성애자와 성소수자(LGBTQ)는 긴 차별과 배제를 견뎌야 했다. 이들에게 품을 내어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큰 상실감을 남겼다. 새 교황 선출을 기다리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들뜬 기운으로 가득 찬 가운데, 가톨릭에서 오랜 시간 소외됐던 이들은 긴장과 기대를 품고 투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가톨릭 최대 성소수자 인권 그룹인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GNRC)의 공동의장 메리앤 더디버크도 이들 중 한명이다. 더디버크는 지난 6일부터 콘클라베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를 예정이다. 미국인인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까지 뻗은 45개 가톨릭 퀴어 그룹으로 구성된 단체를 이끌고 있다. 한국의 레즈비언 가톨릭 커뮤니티인 ‘알파오메가’도 이곳에 속해 있다. 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이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탄압에 저항하고, 교회를 대상으로 퀴어의 존재를 알리는 교육 등을 통해 동등한 권리와 포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평신도와 수도자, 여성 등 다양한 신자들이 교회 개혁안을 제안하는 ‘시노드’에도 참여해 성소수자와 동성애자 신도들이 교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시노드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 개혁 성과 중 하나다.



한겨레는 7일(현지시각) 성 베드로 광장 인근에서 더디버크를 만났다. 그는 “우리 또한 교회의 일부라는 점을 적극 드러내고, 교회가 (성소수자에게) 보다 포용적인 존재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바티칸에 왔다”고 말했다. 더디버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의 길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며 “우리들이 교회의 이해와 환영을 받고, 게이나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신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교리 또한 바뀌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포용 보여준 교황, 퀴어 신자들에 해방감을 안겼다







지난 2023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에서 만난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GNRC)의 공동의장 메리앤 더디버크. 사진 GNRC 제공

지난 2023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에서 만난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GNRC)의 공동의장 메리앤 더디버크. 사진 GNRC 제공


가톨릭에서 ‘금기시된’ 존재였던 성소수자 신도들에게 있어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동성애와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 가톨릭에서 가장 포용적이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낸 인물로 꼽힌다. 2013년 즉위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2014년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를 설립하는 동력이 됐다. 더디버크는 2013년 7월 동성애자 사제에 관한 질문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가 어떻게 그를 판단하겠는가?”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며 “교황은 퀴어를 악마화하거나 심판하는 말을 하지 않고, 게이와 레즈비언 등 우리가 쓰는 언어를 사용했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퀴어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더디버크를 비롯한 단체 구성원들은 2023년 10월엔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더디버크는 당시 “매우 강렬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퀴어 신자들이) 목회 과정에서 겪은 상처, 우리의 희망과 기쁨을 교황께 말했다”며 “교황은 우리를 안아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 주었다”고 전했다.



더디버크는 2023년 12월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도록 교황청이 공식 허용한 방침이 실제 신도들의 삶에 미친 영향도 들려줬다. “에콰도르의 한 동성애자 청년의 조부모는 그의 파트너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는데, 사제의 축복이 허용된 뒤 마침에 파트너의 방문을 허락했다”며 “교회가 바뀌면 사람들의 삶에도 굉장한 변화를 남긴다”고 말했다.





가톨릭의 위기…과거 회귀가 아닌 새 현실 포용해야





콘클라베 둘째날인 8일(현지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굴뚝이 보이는 대형 스크린을 지켜보는 신도들. EPA연합뉴스

콘클라베 둘째날인 8일(현지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굴뚝이 보이는 대형 스크린을 지켜보는 신도들.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민결합법을 공개 지지하고,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는 규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과거 가톨릭이 외면했던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전통적 가족관을 수호하는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콘클라베 기간까지 강경 보수 성향의 가톨릭 세력은 기존 교리에 충실한 가톨릭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선거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더디버크는 전세계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줄어들고 있는 오랜 문제를 지적하며, 가톨릭은 동떨어진 섬이 될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점증하는 국가주의와 제노포비아(이민자 혐오) 속에서 새 교황은 사회와 함께하며 기후문제와 난민, 전쟁문제에 도덕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성소수자 이슈뿐 아니라 교회 내 여성의 제한적인 역할과 이혼, 재혼에 대한 부정적 관점 등을 탈피해 문화적 다양성을 꽃피울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더디버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교황으로 변신한 자신의 이미지를 공개했던 일엔 큰 한숨을 지었다. 더디버크는 “실제로 미국 내 트럼프를 지지하는 가톨릭들은 자금력이 풍부하다. 공화당은 교황 선출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며 “그러나 이는 모든 권력을 갖길 바라는 환상에 젖은 행동으로, 매우 부적절하고 모욕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더 많은 발걸음 필요한 가톨릭 개혁…콘클라베 폐쇄성 지적도



10년가량 국제 퀴어 가톨릭 단체를 이끈 더디버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늘 아래 긍정적인 변화를 느꼈지만 때때로 그 속도는 더뎠고, 한계도 있었다. 이 단체 또한 교황청의 공식 인가를 받지 못했고, 미국에서도 공식 가톨릭 단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 결혼 자체는 반대했다. 더디버크는 “아프리카나 동유럽에서 퀴어 단체 지도자들은 추방을 당하는 등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퀴어 인권 운동의 역사가 오래지 않은 만큼, 가톨릭은 여전히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시작한 인물”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와 거리를 뒀지만, 만남은 계속돼야 한다. 교회의 교리가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추기경단끼리 선거를 여는 콘클라베의 폐쇄성도 지적하며 “(콘클라베가) 현대 세계에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인지엔 의문이다”라며 “시노드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곳인 것처럼 콘클라베도 교황청 바깥의 사람들이 원하는 교황의 모습을 듣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