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홈플러스가 진행한 창립 28주년 기념 단독 슈퍼세일 ‘홈플런 is BACK’ 행사가 첫날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메가 푸드 마켓 라이브 강서점이 개점 전부터 고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사진=뉴스1(홈플러스 제공) |
#지난달 이마트가 캐나다산 수입 삼겹살을 100g당 791원에 선보였다. 그러자 대규모 할인 행사 중이던 홈플러스는 같은 상품의 가격을 100g당 790원으로 내렸다. 100g당 1원, 한 근(600g)으로 따지면 6원 차이에 불과하지만 고객에게 "더 싸다"란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에 질세라 이마트도 곧바로 제품 가격을 100g당 779원으로 인하했다.
최근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유통사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고가 명품과 의류를 주력 판매하는 백화점을 제외하고 이커머스(전자상거래)는 물론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 등 사실상 모든 유통 채널에선 고객의 관심을 끌 만한 '초저가' 기획 상품이 화두로 떠올랐다.
편의점에선 5년 만에 1000원 이하 삼각김밥이 다시 나왔다. CU가 지난해 출시한 880원 컵라면, 990원 스낵, 990원 채소 등 1000원 이하 기획 상품들은 지금까지 730만개 이상 판매됐다. 특히 NB(일반 제조사 브랜드) 상품의 반값 수준인 990원짜리 PB(자체 브랜드) 핫바는 한 달 만에 50만개가 팔리며 공급이 달릴 정도로 인기다. 커피·도시락 등 편의점 스테디셀러도 마찬가지다. 10원이라도 더 싼 제품이 잘 팔린단 전언이다.
이커머스 11번가가 이달 초 프로모션 상품으로 선보인 '메가MGC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할인 쿠폰 12만장도 순식간에 동났다. 2000원짜리 커피를 22%(440원) 싸게 살 수 있는 쿠폰이다.
이렇게 마진을 최대한 낮추고, 때론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초저가 상품을 파는 이유는 유통사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값 한우나 삼겹살 등 특가 기획 상품은 사실상 마진이 없다고 봐야 한다"며 "이 상품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은 고객이 다른 상품도 함께 사면 자연스럽게 객단가가 오르면서 이익을 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건 정보 유통 속도가 빨라진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신규 매장 오픈이나 대규모 할인 행사를 앞두고 유통사가 기획한 특가 상품 리스트가 지역 커뮤니티 등에 공유되고, 이 소식을 접한 고객들이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줄지어 기다리는 '오픈런'은 일상이 됐다.
특히 먹거리는 '싸면서 품질이 좋아야' 고객이 찾는다. 30년 이상 신선식품 유통 경험을 쌓은 대형마트들이 최근 본업인 그로서리(식료품) 경쟁력 강화에 나선 배경이다.
이에 따라 유통사들은 앞으로 신선식품을 제외한 가공식품과 생활용품 분야에서도 가성비 확보가 용이한 PB 상품을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 이미 쿠팡과 이마트를 비롯한 여러 대형 유통사들의 PB 상품 판매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그런데도 일부 제조사들은 대선을 앞두고 원가 인상 등을 이유로 잇따라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10원이라도 비싸면 고객이 등을 돌리는 냉엄한 유통 시장의 현실과는 대비된다. "우유는 무조건 PB 드세요, 제조사는 똑같아요"라던 전직 우유업체 종사자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유엄식 기자 |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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