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어, 총리님 아니세요?"
지난해 12월 말, 서울 이촌동의 작은 식당에서 당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우연히 마주쳤다. 불과 이틀 전 더불어민주당이 그를 탄핵소추했다는 기사를 썼던 터라 나도 모르게 아는 척을 했다. 제주항공 참사가 막 발생한 직후였다. 직무정지가 되지 않았다면 무안 현장에 갔을 그는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도 관련 기사를 읽느라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급기야 일행으로부터 "그만 좀 보고 식사하라"고 소리를 듣고야 수저를 들었다.
50여년 공직생활에 예기치 못한 쉼표가 찍혔지만 여전히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그였다. 이후 한 전 총리는 탄핵이 기각돼 직무에 복귀했고, 다시 사퇴한 뒤 지금은 대통령 후보가 됐다.
여러모로 한 전 총리는 여느 대통령 후보들과 많이 다르다. 출마 선언엔 개헌과 통상문제를 3년 내 해결하고 권력을 내려놓겠단 약속이 담겼다. 자신을 딛고 가라는 메시지가 강조됐다.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시민단체에 가로막히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아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여태 '사랑'을 입에 올린 대선후보가 있었던가.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판할 때도 '이재명'이란 이름을 직접 입에 올리지 않고 '그 분', '모 정치인'이라 했다. 지난 6일 관훈토론회에서 한 질문자가 "30분 동안 사람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그분들이 진정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게 보면 순수함이고, 나쁘게 보면 순진함이다. 단일화 방법에 대해서도 "당에 일임하겠다"는 말 빼곤 일체 언급을 않는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냉혹하다. 때론 비정하다. 옳고그름, 당위의 문제를 넘어선다. 정책이 '당위'(Sollen)라면 정치는 '현실'(Sein)이다. 이전투구를 무릅쓰고 권력을 다투는 곳이다. 진흙탕에서 구르길 거부한다면 애초에 정치에 나설 준비가 안 된 셈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순순히 단일화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정치를 하기에 너무 순진한 태도다. 당에만 맡겨두지 말고 한 전 총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가 정치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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