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에 나선 7일 정은경 총괄선대위원장과 함께 전북 진안군 새참거리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약자나 어린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특히 안전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7일 오전 10시40분, 전북 임실군 임실시장에 주민 수백 명이 몰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 넘게 남아 있었다. 목 좋은 가로변은 유력 대통령 후보를 보려고 일찌감치 자리 잡은 지지자와 임실군민, 상인들로 빈곳이 없었다. 경찰이 길 양쪽에 5m 간격으로 서서 폴리스라인을 쳤다. 오전 11시9분, 기자들이 모인 메신저 방에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이 공지글을 올렸다. ‘연설 예상 포인트 : 시장 가운데 사거리’
기자들이 서둘러 사거리 주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11시10분, 이 후보가 시장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100미터 걷는 데 걸린 시간, 30분
이재명 후보가 충청도와 전북을 중심으로 진행한 ‘골목골목 경청투어 : 국토종주편’이 7일 끝났다. 이 후보는 1일부터 경청투어를 시작했는데 지역별로 콘셉트를 잡아 1~3일씩 현장을 찾고 있다. 처음엔 강원 접경 지역을 돌았고, 이후 경북과 충청도를 거쳐 전북까지 왔다. 일주일 동안 다닌 도시만 34곳이다. 하루 평균 5곳을 방문한 셈이다. 전통시장 등 주민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았다.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한 장소에 머물렀다.
국토종주편 마지막날인 7일, 이 후보가 두 번째로 찾은 지역이 전북 임실이었다. 이 후보가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주민들과 인사를 한 이 후보는 차량 옆에 있던 어린아이를 한 번 안아 든 뒤 시장으로 향했다.
“이재명! 이재명!” 지지자들의 연호가 이어졌다. 사인을 받으려고 이 후보의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들고 온 지지자도 많았다. 이 후보는 책을 내미는 이들에게 빠짐 없이 사인을 해주려고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휴대전화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중간중간 주민들과 짧은 대화도 나눴다. 한 주민이 “젋은이들이 시골에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이 후보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시장 사거리에 도달했을 때, 짧은 연설을 했다. 단차가 있는 화단 같은 곳에 올랐는데도 뒷사람까지 잘 보이지 않자 인근 식당에서 급하게 의자를 빌려왔다. 의자에 오른 이 후보가 말했다. “6월3일이 새로운 세상의 출발점이 될 겁니다. 맞습니까?” 이 후보가 말을 멈출 때마다 박수와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팬클럽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연설을 마친 뒤에도 이 후보는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다. 채 100m도 되지 않은 시장 거리를 걷는 데 30분이 걸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에 나선 7일 전북 임실군 임실시장에서 시민 및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예산시장 상인이 하고 싶었던 말
“빵 하나 사주세요!” 7일 오후 이 후보가 충남 예산군 예산시장을 지날 때 한 빵집 주인이 소리쳤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에 이 후보는 미처 듣지 못하고 지나쳤다. 소리친 이는 카스테라집을 운영하는 이강민씨(45)다. 이 후보를 이전부터 지지해 왔다는 그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물었다.
“예전에 성남시장 당시 가졌던 초심대로만, 대통령 당선되더라도 성남시장 때처럼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민생 법안 같은 게 통과되지 않고 묶여있었던 게 많잖아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것들이 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해요. 예산시장에만 뭘 해달라는 게 아니라, 모든 지역에 있는 자영업자들이 잘 되면 좋겠어요.”
이 후보는 이날 예산시장 안 한 카페에 들려 커피도 샀다. “가게도 깔끔하고 좋은데 좀 어떠냐”고 묻는 이 후보에게 이효선씨(40)는 “어렵지만 그나마 단골이 좀 찾아준다”고 했다.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씨는 이 후보가 떠난 뒤 한겨레와 만나 “저도 자영업을 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해보니까 정말 힘들다”며 “세금도 너무 많이 내야하고 일은 열심히 하지만 많이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의 방문이 모두에게 달가운 건 아니었다. 예산시장에서 일하는 윤아무개씨(65)는 “솔직한 얘기로 윤석열도 이재명도 마찬가지로 큰 기대는 없다”며 “대통령 되기 전에 공약 해놓고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했다. 윤씨는 “평일이라 장사도 안되는 판에 이재명 온다고 시끄럽기만 하다. 누가 오든 큰 기대도 없고 상관도 없다”고 말했다. 한 점포 주인은 “나 살기도 바쁘고 (이 후보에게) 하고 싶은 말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거리에서 이재명 앞에 서야만 했던 사람
이 후보가 지역 곳곳을 다니는 동안 지역의 숙원이나 오랫동안 갈등을 겪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리 약속된 간담회와 달리 거리에서 이 후보를 기다렸던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30초 정도였다. 지난 1일 경청 투어 첫날 경기 연천을 찾은 이 후보가 거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커다란 피켓을 들고 앞을 이 후보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 있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다칩니다.” 경호원들이 소리쳤다. 이들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나온 활동가들이었다. ‘이재명 후보님 기지촌 여성의 아픔을 기억해 주세요’,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를 유산으로 보존하고 역사문화·평화공원으로 활용하라’는 손팻말이 보였다. 이 후보가 경호원을 제지하고 약 10초 동안 서서 이들의 말을 들었다. “기지촌 여성들을 강제수용하던 성병관리소를 한 번 꼭 들려주세요. 저희는 이걸 꼭 지켜야 합니다.” 활동가들이 말했다. 이 후보는 30초 정도 이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당시 이 후보 지지자들의 함성과 경호원의 저지하는 외침, 취재진의 원성 등이 겹쳐 이 후보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현장에 있었던 최희신 활동가는 한겨레에 “이 후보가 이 문제를 알고 있다고 얘기했고, (성병관리소를) 지키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일 오후 경기 연천군 전곡시장 일대를 지나던 중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막아달라는 손팻말을 보고 있는 모습. 한겨레 김채운 기자 |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락에 방치된 성병관리소는 1973년부터 1988년까지 국가가 운영한 수용소로, 과거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여성들이 성병 보균자 진단을 받으면 완치될 때까지 가둔 곳이다. 최 활동가는 “누구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흔적을 지우려고 하고 있다”며 “이걸 기억하고 미래세대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를 알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7일 경청투어를 마무리한 뒤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전에는 선거운동이라는 게 ‘우리가 뭐 할 겁니다’, ‘뭐 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일방적 주입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뭘 원하는지를 듣자는 것”이라며 “(들었던 이야기 중에) 좋은 아이디어도 많고 과제도 많이 발견했다”고 말했다. 8일 하루 경청투어를 쉬어간 이 후보는 9일부터 경북지역을 돌 예정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