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들이 2023년 2월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며 청소년 인권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유지민 | 서울 문정고 3학년
청소년의 언어습관, 특히 비속어 사용에 대해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어왔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은 점점 만연해지고 있고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장애 학생으로 12년, 특히 약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혐오 표현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짐을 느낀다.
현재 재학 중인 서울 문정고등학교는 특수학급이 있고, 장애 학생도 여러명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너무나 쉽게 장애와 관련된 표현을 누군가를 비방하는 목적으로 쓴다. ‘병○’ ‘장애○이냐’ 같은 말은 물론이고, ‘장애인같이 ○○한다’는 말은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통용되는 비유가 되었다. 교실에서, 화장실에서, 복도에서, 급식실에서, 어디를 가든 울려퍼지는 온갖 혐오 표현이 시도 때도 없이 귀에 꽂힌다.
학교가 비장애인만 있는 공간이었다면 불편을 느끼고,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할 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장애 학생을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인데도 혐오 표현을 쓰는 아이들의 시야에는 그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어가 내가 아닌 말이기에 그들을 지적하기도 애매하고, 왜 그런 표현을 쓰느냐고 따지다간 학교 일과 내내 말싸움만 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학생인 내가 그들을 지적한다고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헤드폰을 쓰거나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더욱 문제인 건, 전자기기를 쓸 수 없는 수업 시간에도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선생님들의 지도이다. 그러나 선생님들마저 아이들을 옳은 길로 이끌 의지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시험이나 모의고사를 앞둔 기간엔 자습 시간이 많다. 아무리 자유로워도 엄연한 수업 시간 중 반 전체에 들릴 크기의 목소리로 혐오가 담긴 말을 한다. 이들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생님에게 분명히 들렸을 크기의 목소리인데도 부동자세로 당신의 일을 하신다. 이 사안에 대해 여러 차례 담임 선생님에게 건의한 적도 있다.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 매 교시 반을 옮겨 다니며 수업하는 특성상 담임 선생님의 권한이 크지 않고, 학생들과 유대감도 낮기 때문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교내 차별·혐오 표현을 규제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교육은 학생의 재능과 개성, 정신적·신체적 능력의 잠재성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차별·혐오 표현을 통한 인권침해가 금지되지 않을 경우 교육의 목적 역시 달성되기 어렵다”며 “차별·혐오 표현은 그 근거가 되는 장애·성별 등의 사유에 대하여 차별적 감정이나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며, 나아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조화를 깨트리게 된다.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의 인격이나 가치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에서 이러한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지금 같은 교내 분위기라면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은 결코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곧 성인이 될 나이에 혐오 표현을 광범위하게 쓰고, 이를 방관하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거나 교내에 미칠 영향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소수자 학생들에게 학교는 더는 ‘안전지대’가 되어주지 못할 것이다.
이미 고착화한 문제는 쉽사리 뿌리 뽑히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사소한 말 한마디에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어지고, 그럴 수 없어 무기력해지는 이가 없어야 한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 한 변화의 여지는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처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교내 혐오 표현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올바른 언어습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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