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법비에게 철퇴를! 조희대 대법원 박살 내자’ 138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이 촛불행동 주최로 열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4월26일 새벽. 시인 김수영은 흥분과 격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선잠 깼을 터다. 79행에 이르는 긴 시의 중반쯤에서 김수영은 ‘구공탄 피우는 불쏘시개라도’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놈 사진을 집어넣자고 거듭 소리친다.
2025년 5월 초. 우리는 ‘혁명도 아닌 것이 소요 같기도 한 계엄과 내란 시기’를 다섯달 넘게 견디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대법관 10명이 모여 앉아 기상천외한 법 기술을 시전했다. 선거로 정치적 평가를 받아야 할 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를 ‘그놈들’이 작당하여 사법적 코너로 내몬 것이다. 분노와 모멸감이 ‘내면적 빡침’으로 솟아올라 내 일상을 온통 허둥대게 한다.
교육자는 정치에 관심을 두고 그 과정에 참여한다. 교육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보다 정치가 교육에 미치는 현실적 규정력이 훨씬 더 큰 탓이다. 보라. 교육부 장관 이주호가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를 만들겠노라며 강하게 밀면 6조6천억원어치 프로젝트가 끝내 실현된다. 교사 88%, 학부모 70%가 반대했는데도 그렇다. 박정희 유신 독재 때는 새마을교육이 온 나라 학교의 일상을 뒤덮었고, 전두환 군부정권 아래서는 하루아침에 7·30 과외 전면 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상상해본다. 대법관이 법복 벗고 교편 잡는 때를. 당신들에게 학생이 묻는다. “선생님, 재판기록 6만8천쪽을 어떻게 이틀 만에 다 읽어요?” “저는 생일이 빨라 이번 선거 때 투표권 있어요. 근데 제가 지지하는 사람을 대법관들이 날려버렸어요. 이거 민주주의 맞아요?” “악법도 법이니까 그냥 따라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질문하는 학생을 설득할 수 있다면 대법관 그만두고 교직을 맡아라. 불가능한 가르침을 이룬 그대들은 엄청나게 위대한 선생이 될 것이다. 큰 틀에서 교육정책, 작은 틀에서 교실 일상. 모두 정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올바른 정치를 펴는 일이 교육 행위의 가장 유력한 바탕이다. 도덕적 리더십을 잃어버린 정치, 그것을 옹호하려고 안간힘 쓰는 고위직 법 기술자들은 존재 자체가 반교육적 환경을 구성한다.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법정에서 도드라진 활약을 보였던 김진한 변호사가 1년 전 펴낸 책이다. 법실증주의를 논의하는 대목에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그의 성찰을 만날 수 있다.
법실증주의는 독일에서 발달했다. 그 나라 법률가에게 법이란 실정법을 의미했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논리적 해석론이었다. 법 밖에 존재하는 도덕, 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은 법 해석을 가로막는 불순물처럼 여겼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격동기에 독일 법관들은 법 논리를 통해 법을 확고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공동체를 보존하려 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법 적용이 엄격했으되, 전체주의 세력은 법의 보호를 받는 결과가 초래됐다. 법실증주의는 반전과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사법 체계에서 정의를 부정당한 사람들은 공동체 파괴자로 변신한다. 민주주의 헌법적 가치가 공동체를 떠나자, 좌우의 극단주의 이념이 그 빈 공간을 메운다. 무엇이 확실한 가치인지 헷갈리는 상황 아래 국가와 민족을 숭배하는 전체주의 지도자가 대중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선다. 국가사회주의당 히틀러가 집권하게 된 배경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중립적 법의 가치를 숭배했던 법조인들 도움이 컸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
아직 희망은 있다. 나처럼 ‘열받은’ 이가 혼자만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1대 대통령 선거 유권자의 52% 안팎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추산하니 2300만명이 넘는다. 지켜보겠다. 지금부터 꼭 한달 뒤. 선거로 민심이 확인된 다음 ‘그놈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사족 한마디 덧댄다. 설령 ‘그놈들’의 사진을 떼어내더라도, 김수영 시인의 제안과 달리, 나는 그것을 ‘밑씻개’로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섭식과 소화 작용에서 ‘배출 구실’을 담당하는 그곳도 내 신체의 일부로서 무척 소중하다. 함부로 더럽히고 싶지 않다. 아이들 가르칠 때 부정 타고 싶지 않은 선생의 마음이니 그대들은 널리 이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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