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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논란[김학균의 투자레슨]

서울흐림 / 20.7 °
주식투자 인구 늘면서 주식 보유기간은 짧아져
소액주주들 미래 투자보다 현금 배당 선호 우려
현실 투자자는 주주환원은 물론 성장성까지 따져
시장에 나선 상장사, 주주와의 소통에도 힘써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 상장사들의 지배구조 논의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여름이 변곡점이 된 것 같다. 적어도 작년 상반기까지는 상장사 지배주주들의 의사결정에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계열사간 합병이건, 유상증자건, 상장해 있는 모회사의 자회사 중복 상장이건 다소의 논란은 있었을지언정 회사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지배주주가 내린 결정은 그대로 실행됐다.

그렇지만 작년 8월부터 대기업 계열사간 합병과 유상증자, 자회사의 중복 상장 등에 줄줄이 제동이 걸리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자세하게 소명하라는 금융감독원의 요청에 기업들이 기존 계획을 철회 또는 변경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근간에는 ‘바람직한 지배구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내재해 있다고 본다.

지배구조는 기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지배주주, 소액주주, 경영진, 채권자, 직원 등의 역학관계를 총칭하는 단어다. 기업이 사업에 자원을 배분하고 영업활동을 하고 벌어들인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배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증시에서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는 주로 소수의 지분율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배주주와 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분산해 있는 소액주주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이라는 앵글로 진행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는 세 가지 큰 변화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해외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투자자들이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이웃 일본의 사례도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고민을 던져줬다. 일본 증시는 아베 2차 내각이 출범한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해 버블경제 시대에 기록한 1989년의 고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 과정은 관 주도의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됐는데 2014년 8월 이토 구니오 히토쓰바시대 교수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경쟁력과 인센티브’ 보고서와 2023년 3월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들에 요구한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실적 방안 권고’가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했다. 모두 일본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권고가 담겨 있었고 작년부터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밸류업’도 일본의 사례를 본떠 고안한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주식투자인구 급증도 소액주주의 권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한국의 직접투자인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이었던 2019년 말 618만 명에서 2024년 말 1423만 명까지 증가했다. 주식투자가 대중화한 만큼 정책의 영역에서도 주주 다수의 권익을 살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법 개정 또는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기업인들의 이익단체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한국 기업의 장기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비판의 요지는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파는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단기적’이라는 데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기업의 소유주인 주주들의 주식 보유기간은 극히 짧아지고 있다. 주주들의 단기편향적 행태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설비투자 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비투자보다는 현금배당이나 자사주매입 등과 같이 당장 주주들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기업경영이 이뤄지다 보면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념적으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우스꽝스러운 느낌도 든다. 최근 수 개월을 제외하면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지배주주가 추진했던 설비투자나 인수합병(M&A) 등이 가로막혔던 사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배당 확대 등 주주들에 대한 과도한 퍼주기가 기업의 장기 성장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오랫동안 글로벌 평균을 밑도는 배당성향을 유지해 온 나라에서 쉽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은 ‘주주환원 확대’가 아니다. 주주환원은 잉여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자기자본을 효율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투자기회를 찾지 못할 때 이뤄져야 한다.


결과론을 재탕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한국 반도체 업계의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례를 비교해 보자. 주주환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훨씬 모범적이다. 2010년 이후 작년까지의 15 회계연도 동안 SK하이닉스의 배당성향이 삼성전자보다 높았던 해는 2022년 단 한 번에 불과했다. 2024년까지의 최근 5회계연도의 배당성향도 삼성전자가 34.6%, SK하이닉스가 18.4%로 삼성전자가 훨씬 높다. 반면 2020년 초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 등락률은 -2.1%인 반면 SK하이닉스는 87.7%를 기록하고 있다. 상장회사가 주주환원을 늘리는 것은 충분히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만 주주환원이 다가 아니다. 특정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의 총수익(total shareholder return)은 현금배당수입과 주가변동으로 구성된다. 성장이 정체한 산업에 속한 기업은 주주환원의 규모가 중요하지만 성장성이 높은 산업에서는 적절한 투자 등을 통해 주가를 올리는 게 장기적인 주주가치 극대화에 부합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업의 선택을 주주들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들은 기업의 최고위직 임원을 뜻하는 ‘C레벨’ 임원 중에 주주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최고주주소통책임자’(Chief Shareholder Officer·CSO) 자리를 잇따라 신설하고 있다.

상장은 영문으로 ‘고 퍼블릭’(go public)으로 표기한다. 상장사들은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사업을 위한 자금지원을 받은 만큼 기업의 행동도 개인기업과 다르게 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소액주주들의 의사결정이 모두 선이어서가 아니다. 지배주주들이 행하는 의사결정이 100%의 진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지배주주의 결단이 기업을 흥하게 한 사례도 많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기업가치를 파괴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어떤 경우에라도 상장사는 자신들의 결정을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 책무를 지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상장사가 받을 수 있는 경영권 위협은 회사의 내재가치보다 현저히 낮은 주가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