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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말고, 그냥 어버이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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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말고, 그냥 어버이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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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6일 서울 창경궁 대온실 교육관에서 열린 '효의 궁, 창경궁에서 정조의 효심을 배우다' 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효의 상징인 복숭아꽃을 활용해 효도등을 만들고 있다. 뉴시스

6일 서울 창경궁 대온실 교육관에서 열린 '효의 궁, 창경궁에서 정조의 효심을 배우다' 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효의 상징인 복숭아꽃을 활용해 효도등을 만들고 있다. 뉴시스


마침 ‘달곰한 우리말’에 첫 글을 올리는 날이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 어버이를 생각하는 날, 또 어버이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

그런데 이 ‘어버이를 생각하는 날’이라는 표현을 막상 쓰려고 보니 눈에 어색하다. ‘어버이’보다 ‘부모님’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맞다. 그러고 보니 작년 요맘때 남긴 메시지에 ‘오늘은 어버이날이라 부모님 뵈러 간다’는 글귀가 있다. 우리는 ‘부모님’더러 ‘어버이’라고 좀체 일컫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일컫는 단어가 ‘부모님’ 쪽으로 압도적으로 몰려 있다. 요즘에는 전산화된 말뭉치나 AI를 통해 어떤 단어가 얼마만큼 어떤 말들과 어울려 문장으로 쓰는지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찾아보니 죄다 ‘어버이날’이라는 단어로 합쳐 쓸 뿐, ‘어버이’를 따로 쓴 용례는 별로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남긴 말로 구축한 ‘한국어 학습자 말뭉치’에도 ‘어버이날’로만 딱 10건 나온다. 흥미로운 건 1990년대 이전 말뭉치에는 교과서와 신문을 비롯해 여기저기 ‘어버이’만 따로 쓰이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는 점이다. 1993년 어버이날 어느 신문에 ‘8일 한신코아백화점을 찾은 어버이에게 카네이션을 무료로 달아준다’라고 실린 문장을 보니, 딱 그 시기쯤 아들이 달아준 꽃을 달고 하루를 보내셨던, 젊으셨던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애틋해진다.

그저 한자어가 고유어의 설 자리를 잃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어버이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여하튼 현대어로 치면 ‘부모님’이 아니라 ‘부모’에 가까운 단어라 성격상 입말보다는 글말에 좀 더 어울렸기 때문에 우리가 입말로 ‘어버이’를 더 써보고 싶어도 약간의 주저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떠올리면 마음에서 달곰함이 배어나지만, ‘부모’는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부모 교육’과 같은 감정 덜어낸 용어는 상황을 보아 살짝 낯설어도 ‘어버이 교육’ 같은 말로 불러보아도 괜찮을 거 같다. 생명과학 용어인 ‘hemizygosity’를 ‘반접합성’과 함께 ‘한 어버이 이체성’이라고도 쓰는데, 이 말도 그럴듯해 보인다.

사족 한 가지. 교실에서 ‘어버이’의 뜻을 발표해 보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어머니의 어, 아버지의 버, 사람을 가리키는 이(젊은이, 지킴이)’의 세 글자를 따서 만든, ‘엄빠’의 높임말이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발랄하여 재밌지만, ‘어버이’는 그렇게 유래된 것이 아니니 어버이날을 맞아 인터넷을 뒤적여 보아도 좋겠다.

강남욱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