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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판결 늦었다면 오해 더 컸을 것"…법원행정처장 "대선개입 아냐"

이데일리 한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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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판결 늦었다면 오해 더 컸을 것"…법원행정처장 "대선개입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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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전체회의서 이재명 상고심 판결 정당성 강조
민주 "대법원장, 사법부 망친 장본인…자진사퇴해야"
천대엽 "판결 이유로 법관 사퇴요구, 사법독립 침해"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뉴스)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7일 이례적으로 초고속으로 진행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판결과 관련해 “늦어졌다면 오해의 소지가 더 컸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자진사퇴 요구한 가운데, 천 처장은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천 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의 이례적인 초고속 판결 선고에 대해 ‘대선 관여’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자격 박탈이나 낙선 목적으로 선고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판사는 판결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판결을 피하는 순간 판사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이상 시기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건을 예로 들면 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선고를 하되 시기를 더 늦췄을 경우, 이번처럼 빨리 했을 때 경우 모두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법관들이) 대선 한참 전에 이뤄지는 것이 더 낫지 않나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선고시기를 뒤로 했으면 오히려 오해의 소지가 더 컸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자체에 이미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으로 모든 주장과 논거, 견해를 다 대변하고 있기에 판사들은 판결 자체로 평가를 받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으로서 대법원 재판 업무에 관여할 수 없어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들의 심증은 전혀 알지 못하기에 어떤 근거도 없는 추측이라고 부연했다.

“모든 기록 다 읽는 상고심은 없다…쟁점 국한 확인”

천 처장은 소부 배당 전 대법관들의 사건 기록 열람을 문제 삼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선 “법원조직법상 대법원 모든 사건은 1차적으로 전원합의체로 접수된다. 그 이후 다수 사건을 소부로 넘기게 되는 것”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대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참석해 있다. 민주당은 이들 대법관 전원을 오는 14일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대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참석해 있다. 민주당은 이들 대법관 전원을 오는 14일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대법관들이 기록을 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로그기록을 제출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도 “전산이든 기록이든 대법관이 심증을 형성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의 일부이기에, 심판 합의는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법원조직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상고심도 사건 기록 일체를 다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을 둔 모든 국가들은 법률심인 상고심 특성상 대법관이 모든 기록을 다 보지 않는다”며 “대법관은 1심과 2심 판결, 상고이유서, 답변서, 거기서 나타난 상고심 쟁점에 대해 관계된 기록들을 본다. 이와 병행해 전속 혹은 공동조 재판연구관들이 모든 기록을 보면서 관련 있는 보고를 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대법원이 (많은 사건 수에도) 힘들지만 유지가 되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서도 상고이유서에 나와 있는 법률적 쟁점, 즉 허위사실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 분절적 평가를 할지, 종합적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할지 부분에 국한해 심리·판단이 이뤄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이날 회의에서 천대엽 처장을 향해 조 대법원장 사퇴를 건의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에서 이 후보 상고심 판결 관련 청문회를 14일에 개최하고, 조 대법원장과 11인의 대법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사법부의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조 대법원장 사퇴”라며 “그것이 사법부 신뢰회복의 시작”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조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자진사퇴하느냐 아니면 현직 판사들에 의해 끌려 내려오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자진사퇴가 그나마 가문의 명예를 덜 손상시키는 일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조 대법원장의 상고심 처리에 보통 90일 안팎이 걸렸다. 그것만 지켰으면 비판받을 일이 없었다”며 “왜 이재명 재판만 36일로 당긴 것이냐. 그러니까 불공정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 “대법관들, 왜 대법원장 제동걸지 못했나”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은 “(이번 판결로) 유구히 흘러왔던 사법부 독립의 정신과 의지가 오히려 거꾸로 훼손됐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에 의해 사법개혁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천 처장을 향해 “조 대법원장에게 ‘사건의 추이와 상황이 간단치 않다. 국민 여론이 용납하기 어렵고, 일선 법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을 전해달라”며 우회적으로 조 대법원장의 자진사퇴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지원 의원도 “조 대법원장은 완전히 대한민국 사법부를 망쳐버린 장본인이 됐다. 법관들도 이렇게 나가라고 하고 있기에 절대 못 견딜 것”이라며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사법내란 장본인으로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국민은 재판을 신속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조 대법원장은 무엇이 그렇게 이재명 후보가 예뻐서 그런 권리를 이 후보에게만 특혜를 준 것이냐”고 꼬집으며 “후배 법관들이 나가라고 말하기 전에 나가는 것이 국가의 양심”이라고 강조했다.


판사 출신인 박희승 의원은 “법원의 속성상 결론은 이렇게 날 수도 저렇게 날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절차 면에서 적어도 견해가 갈린 경우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이례적 초고속 상고심 선고를 비판했다. 박 의원은 “대법원장이 소송지휘를 그렇게 했다고 치더라도 관여한 대법관들이 합의 시에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냈더라면 이렇게 국민의 공분을 사는 오해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왜 그 훌륭한 대법관들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판단을 못했는지 통탄할 노릇”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천 처장은 이 같은 자진사퇴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장이든 대법관이든, 일반 법관이든 판결에 대해선 오로지 판결로서만, 또 법리로서만 평가하고 비판하고 비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그 같은 취지에서의 신변 정리를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어 “판결에 있어서 당부당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 어두웠던 시절에도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나갔고 앞으로도 지켜나가기 위해선 존중이 더 필요하다”며 “판결에 대해선 기본적인 존중을 하고, 역사적 평가와 책임을 묻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