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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실내악 계속하는 비결… “모든 의견 다 연주한 뒤 최선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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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사전투표 과정에 관리 부실 있어…국민께 깊이 사과"
1975년 결성된 ‘타카치 콰르텟’
50주년 기념 16∼20일 내한 공연
“모두 연주해보는 과정서 답 내려”
창단 50년을 맞은 세계적 4중주단 타카치 콰르텟. 왼쪽부터 에드워드 듀진버리, 하루미 로즈(이상 바이올린), 언드라시 페예르(첼로),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크레디아

창단 50년을 맞은 세계적 4중주단 타카치 콰르텟. 왼쪽부터 에드워드 듀진버리, 하루미 로즈(이상 바이올린), 언드라시 페예르(첼로),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크레디아


대대로 내려오는 식당을 노포(老鋪)라고 부른다. 마찬가지 비유가 음악에서 성립할 수 있다면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타카치 콰르텟(quartet)이야말로 ‘반백 년의 실내악 노포’다. 콰르텟은 4중주단이라는 뜻이다. 1975년 공산 치하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리스트 음악원 재학생들이 결성한 것이 이들의 출발점이다. 5년 전에는 한국계 인기 비올리스트인 리처드 용재 오닐(47)이 이 악단에 가입하면서 국내에서도 친숙한 이름이 됐다. 오는 16~20일 창단 50년 기념 내한 공연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아무래도 반백 년의 ‘장수 비결’이 가장 궁금했다. 원년 멤버인 첼리스트 언드라시 페예르(70)는 지난 50년간 악단에서 변하지 않았던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귀띔했다. 우선 멤버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리허설을 통해서 모든 의견을 연주해 본 뒤에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 이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는 “그래도 해결이 안 될 때는 멤버 가운데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으로 가서 청중처럼 들어본 뒤 판단을 내린다”고 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역지사지(易地思之)야말로 화합의 비결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50년간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1992년에는 리더 역할을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가보르 타카치 너지(69)가 고질적인 손 부상으로 악단을 떠난 뒤 지휘자로 전업했다. 원년 멤버였던 비올리스트 가보르 오르머이(1954~1995)가 골암(骨癌)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는 비극도 겪었다. 현재 제1바이올리니스트인 에드워드 듀진버리는 저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베토벤’에서 “상실의 아픔 덕에 (음악적으로) 더 겁먹지 않게 됐다. 슬퍼하면서 이를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보았다”고 적었다.

비올라는 두 차례 멤버 교체를 거쳐서 2020년부터 용재 오닐이 맡고 있다. 그는 “타카치 콰르텟에 합류하는 건 내 평생 소원(life dream)이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오랜 역사를 지닌 앙상블의 일원이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했다.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미 20년 전에 이 4중주단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으며, 15년이 지난 뒤 그 꿈이 이뤄졌다”고 고백했다. 언드라시는 “용재 오닐은 비단 실내악뿐 아니라 오페라·교향곡·독주곡까지 모든 음악에 대해 백과사전 같은 풍부한 지식과 호기심을 갖춘 연주자”라고 평했다.

보통 4중주단은 성악가와 함께 연주할 기회가 적지만, 이들은 이번 내한 무대에서 소프라노 박혜상과 함께 20세기 독일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의 ‘멜랑콜리’를 협연한다. 반도네온 연주자와 배우, 시인과 집시 음악 연주단 등과 다양한 협업을 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용재 오닐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나를 성장시키는 도전적 프로젝트를 선택하자’는 계획을 세웠고 지금도 그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내한 공연은 16일 세종예술의전당, 17일 익산예술의전당, 18일 제주아트센터,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 서울 5만~13만원.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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