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강원FC 춘천 홈경기가 열린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 진입로 도로변에 김병지 대표이사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린 모습〈사진=시청자 제공〉 |
그런데 이날 경기장 주변 분위기는 평소와 사뭇 달랐습니다. 경기장 입구 도롯가에 '강원 FC와 축구를 사랑하는 춘천시민, 축구인, 팬을 폄훼하는 김병지 대표는 사퇴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춘천시 축구협회와 일부 강원 FC 팬, 시민들이 만들었습니다.
■ACLE 홈경기 개최 두고 춘천시-강원 FC '감정싸움'
이런 현수막이 등장한 배경에는 지난달 드러난 춘천시와 강원 FC 사이 갈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원 FC는 지난해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거두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그런데 홈경기를 치를 경기장이 없어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강원 FC는 홈구장이 있는 강릉과 춘천 가운데 강릉에서 어떻게든 경기를 치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공항과 항공편이 없어서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개최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춘천이 아니면 연고지인 강원도에서 홈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강원 FC는 춘천시와 뒤늦은 협의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지원금 문제 등을 놓고 양측은 입장차를 보였습니다. 기자회견과 입장문 발표를 통해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고 다시 반박하면서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졌습니다.
김병지 강원FC 대표이사가 지난달 17일 오후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 경기장 1층 다목적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홈경기 개최와 관련해 춘천시의 명확한 의사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점입가경 갈등 속에서도 춘천시와 강원 FC는 서둘러 협의에 나섰습니다. ACLE 출전을 위한 자료 제출 시한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양측은 세 번의 실무회의를 통해 이견을 좁혔고 끝내 합의를 이뤘습니다. 춘천시는 그동안 쟁점이었던 지원금과 경기장 시설 개선 문제를 아시아축구연맹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원 FC 측과 계속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강원 FC는 구단 입장에서 K리그 협약과 춘천 홈경기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강원 축구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갈등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김병지 사퇴' 현수막에 "비표 반납" 초강수…꺼지지 않은 갈등 불씨
하지만 김병지 대표가 지난 발언을 공식으로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춘천지역 축구계와 팬들로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반발 기류가 급기야 지난 3일 춘천 홈경기에서 현수막으로 표출된 겁니다.
경기 시작을 두어 시간 앞두고 현수막이 도로변에 내걸리자, 강원 FC는 춘천시에 불법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강원 FC는 경기를 30분 남기고 춘천시 측에 미리 나눠준 비표를 반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요구대로 비표를 반납했고 경기를 보러 갔던 춘천시 관계자들은 그대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여기에는 육동한 춘천시장도 있었습니다.
지난 3일 강원FC 춘천 홈경기가 열린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육동한 춘천시장(가운데)이 비표를 반납하고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사진=춘천시청 제공〉 |
강원 FC는 "불법 현수막 철거는 시의 고유 업무인 만큼 해결을 요청했지만, 시에서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단호히 거부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언제까지 철거하겠다는 말도 없이 방치한 것은 묵인 내지 동조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출입금지'나 '출입제한'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구단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비방 현수막을 방치하기에 공짜 출입하는 비표를 반납해달라고 한 것이고, VIP 비표가 없으니 VIP실 출입을 못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춘천시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은 시즌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예매를 거쳐 들어가면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는 미안하다며, 앞으로 축구장에서는 오직 축구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는 뼈 있는 말도 남겼습니다.
지난 3일 강원FC 춘천 홈경기가 열린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춘천시 공무원이 비표를 반납하는 모습〈사진=춘천시청 제공〉 |
■"못된 정치질" "김병지 대표는 사과하고 사퇴하라!" 지역 내 파장 계속
며칠이 지났지만 이번 사태의 파장은 지역에서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7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춘천시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같은 당 소속 춘천시장을 춘천 홈경기에 출입금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이것은 김병지 대표의 명백한 월권행위이자 갑질이라고 했습니다. 현수막은 춘천시 축구협회와 순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게시한 건데, 엉뚱하게도 춘천시를 탓하며 비표를 빼앗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춘천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김병지 대표의 사과와 즉각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춘천시의원들이 오늘(7일) 오후 춘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강원FC 김병지 대표이사의 사과와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민주노동당 소속 윤민섭 춘천시의원도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현수막이 정말 거슬렸다면 철거 업무를 하는 일부 공무원의 출입을 제한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현직 시장의 출입을 제한한 것은 정치적으로 망신주기 위해 작정한 행태라고 꼬집었습니다. '못된 정치질'로 선을 넘었다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 가며 김병지 대표는 춘천시민에게 사과하고 축구계에서 퇴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사자인 육동한 춘천시장도 "춘천시와 시민들은 정말 열심히 강원 FC를 응원하고 지원해왔고, 최근 ACL까지 진출하는데 분명 엄청난 응원과 기여가 있었다"며, "(출입제한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춘천시민에 대한 씻기 어려운 모독이었다. 대단히 유감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강원 FC는 이번 사태와는 별개로 ACL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성공적으로 경기를 치르려면 춘천시와 강원 FC가 서로 존중하고 힘을 모아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고비 넘은 줄로 알았던 양측의 비방과 감정싸움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대회 준비에도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닌지 팬들의 우려가 큽니다.
조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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