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무소속 후보가 6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다크패턴’이란,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자를 기만하는 디지털 속임수 기법이다.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를 읽으려고 들어갔는데 성가실 정도로 화면을 가리는 광고가 떠서 이걸 삭제하려고 광고창의 엑스(X)자를 눌렀더니 삭제되기는커녕 해당 광고 페이지로 연결된다든가, 무료 체험을 제공한다는 달콤한 공지에 혹해서 신청했더니 장기간 정기구독으로 자동 등록이 되어버린다든지 하는 꼼수가 다크패턴의 전형적 수법이다. 몰라서 속고, 알고도 또 당하는 게 다크패턴이다. 제일 나쁜 점은, 이용자 스스로 실행하도록 유도해서 마치 그 선택이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진행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누굴 탓하겠어? 내 손가락이 문제지!” 하는 자책감으로 스스로 맥이 빠지게 해버린다.
정치에서 이런 다크패턴이 횡행하면 국민이 호구가 된다. 그럴듯한 구호와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다크패턴 정치’는 중요하게 다뤄야 할 담론 자체를 오염시키고 왜곡한다. ‘자유민주주의’나 ‘공정성’이란 용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히트 상품으로 출시되면서 그 의미 자체가 퇴색하고 더럽혀진 것처럼, 사회대개혁을 위한 개헌 담론이 낡은 세력의 대선용 포장지로 쓰이는 현실이 정작 필요한 개헌 담론을 실종시킬까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한덕수는 지난 2일 대선 출마의 변으로 ‘개헌’을 내놓았다. 임기 첫날 ‘대통령 직속 개헌지원기구’를 꾸려서 임기 1년차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2년차에 개헌을 완료하며, 3년차에 대선과 총선을 실시한 뒤 과도적 소임을 다하고 즉각 퇴임하겠다는 선언이다. “권력을 목표로 살아온 정치인은 개헌에 착수할 수도, 개헌을 완수할 수도 없다. 공직 외길을 걸어온 제가 신속한 개헌으로 우리 헌정질서를 새로운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도 했다. 챗지피티가 써준 모범답안처럼 멀끔하다. 신속한 개헌도 좋고, 헌정질서 회복도 좋다. 그런데 여기엔 ‘주체’의 문제가 빠져 있다. 새로운 시대 개헌을 주도할 이의 머릿속엔 대체 무엇이 있는가?
한덕수 후보는 개헌을 매개로 다양한 세력이 연대하자는 이른바 ‘개헌 빅텐트론’을 내세워, 정대철 헌정회 회장,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등 개헌론자들과 회동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에 대해 이렇다 할 전향적 자세를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개헌 무풍지대를 한덕수가 선점하는 모양새다. 한덕수는 개헌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삼가고 있다. ‘견제와 균형, 즉 분권’이라는 방향만 제시하고 국회와 국민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6일 오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 발언을 보면, 그가 생각하는 개헌이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한덕수는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줄탄핵, 감액 예산, 전국민 25만원 퍼주기로는 국민 행복을 이룰 수 없’으니, ‘선택적 법치를 하는 엉터리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을 분명하게 응징’하고 ‘삼권분립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고 했다. ‘선택적 법치’란 다수 의석을 이용해 폭거를 일삼는 포퓰리즘이며, 개헌을 통해 삼권분립의 자유민주주의를 이루는 게 소신이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담화문과 유사하다. ‘12·3 계엄은 잘못’이라고 평가한다면서도 윤 전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반지성이 아닌 지성에 기초한 행동’ 옹호에는 깊이 공감한다며 “그렇게 삿된 분은 아니다”라고 그를 두둔하기도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은 행위는 위헌이라고 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국회가 그런 식으로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것은 ‘가짜 법치주의’이며 개헌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한덕수식 화법은 독특하다. ‘윤석열의 계엄은 잘못’이라는 광고창을 클릭하면 그의 계엄 취지에 공감하는 메시지가 나오고, ‘헌정질서 회복이 중요하다’는 제목을 클릭하면 ‘다수당이 장악한 국회는 가짜 민주주의’라는 내용이 나온다. 정치적 다크패턴 수법이다.
그가 관훈클럽에서 한 발언 중에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분기점에서 제가 그 디딤돌이 되겠다. 존경하는 국민들이 제 등을 딛고 다음 시대로 넘어가시기를 소망한다.” 유권자들이 다크패턴에 속는 국민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꼭 기억해야 둬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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