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패러글라이딩
"하늘을 나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첫 패러글라이딩은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비행의 성지'로 불리는 경기 양평군의 유명산(863.9m) 자락.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으로 가려면 우선 좁은 비포장 산길을 20여 분 달려야 한다. 지난 4일 오전 같은 시간에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신청한 이들은 기자를 포함해 6명. 1톤 트럭을 탄 비행 초보들은 거친 산길에서부터 이미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행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일까.
서울과 가까운 양평은 대표적인 수도권 교외 휴양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용문산 등 자연 풍경을 따라 관광 명소와 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다. 일반의 휴양지와는 달리 양평 상공에는 종종 알록달록한 낙하산이 뜬다. 양평은 높은 고도 덕에 비행시간을 확보하기 쉬워 패러글라이딩에 유리하다. 바람과 열을 이용해 고도를 조정하는 패러글라이딩 특성상 바람과 온도 등 양평의 기상 조건도 적합하다. 서울에서 기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
경기 양평군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이륙한 패러글라이더가 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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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착륙장을 향해 패러글라이더가 하강하고 있다. |
"하늘을 나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첫 패러글라이딩은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비행의 성지'로 불리는 경기 양평군의 유명산(863.9m) 자락.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으로 가려면 우선 좁은 비포장 산길을 20여 분 달려야 한다. 지난 4일 오전 같은 시간에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신청한 이들은 기자를 포함해 6명. 1톤 트럭을 탄 비행 초보들은 거친 산길에서부터 이미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행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일까.
높은 고도에 패러글라이딩 성지로
서울과 가까운 양평은 대표적인 수도권 교외 휴양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용문산 등 자연 풍경을 따라 관광 명소와 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다. 일반의 휴양지와는 달리 양평 상공에는 종종 알록달록한 낙하산이 뜬다. 양평은 높은 고도 덕에 비행시간을 확보하기 쉬워 패러글라이딩에 유리하다. 바람과 열을 이용해 고도를 조정하는 패러글라이딩 특성상 바람과 온도 등 양평의 기상 조건도 적합하다. 서울에서 기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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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더 두 대가 유명산 착륙장에 착륙하고 있다. |
패러글라이딩의 첫 단계는 기상 확인이다. 비가 오면 안 되고, 바람이 세면 더 안 된다. 전날 기상예보에 따라 패러글라이딩 업체에서 진행·취소 여부를 통보한다. 사고의 제1원인은 기상 상황을 무시한 무리한 비행이기 때문에 업체들도 보수적으로 비행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기자도 본래 희망한 날짜로부터 나흘이나 지나서 겨우 ‘이륙 승인’을 받았다. 당일 오전까지도 시계가 너무 좁아 비행이 지연됐지만, 날이 개면서 비행이 재개됐다.
패러글라이딩 체험 예약을 하고 양평역으로 가면 1톤 트럭 픽업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우선 유명산 자락의 착륙장으로 향한다. 착륙장 옆에 패러글라이딩 업체 3곳이 나란히 있다. 어느 업체를 이용하든 같은 이·착륙장을 사용하고 가격도 동일하다. 초급자는 전문 조종사와 동승하는 '탠덤 비행'을 한다. 원하는 추가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동행과 고도를 맞춰 비행할 수도 있고, 직접 조종을 체험할 수도 있고, 반려견과 함께 하는 비행도 있다.
코스를 고른 후엔 비행복을 입는다. 전투기 조종사가 입을 것 같은 초록색 비행복을 받았다. 같은 시간에 비행이 예정된 다른 체험객은 붉은색의 방풍 비행복을 선택했다. 가을·겨울에는 방풍 소재의 두꺼운 비행복을, 봄·여름에는 천 소재의 가벼운 비행복을 주로 입는다.
이날 비행 동지들은 다양했다.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인식과는 달리 특정 연령이나 성별에 치중되지 않았다. 노년의 엄마와 함께 온 딸, 비행 데이트를 즐기려는 젊은 연인, 당찬 초등학생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비행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다음은 이론 교육과 주의사항 전달. 초급자 비행 중 조종은 동승 전문가가 한다. 예상대로 이륙과 착륙이 중요하다. △지상에서 낙하산을 처음 펼치면 뒤로 끌려가니 넘어지지 않게 뒷걸음질 치며 균형 잡기 △완전히 이륙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도움닫기 계속하기 △착륙할 때 최대한 하늘을 향해 다리를 올리기. 이 세 가지만 잘 기억하면 다칠 일은 없을 거라고 교육자가 안심시켰다.
허공을 향한 발길질...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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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은 좁고 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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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풍경. |
이론 교육이 끝나면 이륙장으로 이동한다. 픽업 차량은 급경사가 반복되는 험한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맨몸으로 하늘을 날기도 전에 트럭에서 이리저리 튕겨나간다. 비행 초급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안내를 맡은 이는 "오프로드 주행과 비행, 두 액티비티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1석 2조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20여 분을 달리면 빽빽한 숲을 뒤로하고 평평한 풀밭이 나온다. 이륙장이다. 유명산에는 총 3곳의 이륙장이 있는데, 그날의 바람에 따라 이륙장이 정해진다. 이날은 가장 낮은 고도의 이륙장 바람이 좋아, 그곳에서 체험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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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장에서 헬멧과 하네스를 착용하고 낙하산 연결만 남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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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 체험객들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
이륙장에서 본격적인 비행 장비를 착용했다. 헬멧, 장갑,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하네스’를 멘다. 지상에서는 늘어진 가방처럼 생겼지만, 활공하며 자연스럽게 공기가 채워져 바닥에 에어백이 붙은 의자로 변신한다. 이 의자에 앉아 비행하고, 에어백이 착륙할 때 충격을 흡수한다.
조종사가 최종 안전점검을 마치면 이제 하늘로 날아오를 시간이다. 낙하산을 연결하자 교육 때 들었던 것처럼 누군가 뒤에서 강하게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의 힘으로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교육은 교육일 뿐,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렵게 자세를 바로잡자마자 교육자는 뛰라고 다그친다. 있는 힘껏 허공을 향해 내달렸다.
발길질 몇 번에 몸이 떠오른다 싶을 찰나, 다시 비탈길을 향해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조종사의 다급한 재촉이 이어진다. “계속 차! 계속!” 그의 구호에 부리나케 수풀을 몇 번 더 걷어찼다. 허공에 허우적대는 느낌이 사라질 즈음, 몸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아, 이젠 확실히 이륙했구나.' 직감했다.
봄엔 포근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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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중 발밑으로 보이는 탁 트인 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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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상공에서 한 패러글라이더가 거의 수직으로 기울어진 채 활공하고 있다. |
부풀어 오른 하네스에 몸을 안착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 세상이 발아래 있었다.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었다. 온몸이 자유로웠다.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이 밀려들었다. 땅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 푸른 새순이 돋은 나무들이 잔디처럼 솟아올랐다. 그 사이로 구불구불한 산길과 물길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 가까이서 보지 못한 것들이 멀리서 보인다. 비행 전 우려했던 공포와 멀미는 날아오르는 순간 사라진다.
비행한 지 10여 분이 지나면 착륙 준비를 해야 한다. 착륙도 선택할 수 있다. “편안한 마무리를 원하세요? 다이내믹한 비행을 원하세요?”라는 조종사의 질문에 잠시 멈칫한다. 비행의 참맛을 알고 싶은 마음에 후자를 택한다. '고수의 패러글라이딩'의 세계를 잠시 구경할 수 있다. 그저 바람을 타고 하강하는 줄만 알았던 낙하산은 순식간에 옆으로 기울었다 다시 하늘로 솟구친다. 놀이공원의 바이킹을 탄 것처럼 우주에 붕 뜬 느낌이 엄습했다. 왜 패러슈트(낙하산)와 패러글라이더(낙하산+글라이더)를 구분해서 부르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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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스 하단의 부풀어오른 에어백이 착륙 시 충격을 흡수한다. |
짜릿한 비행이 끝나면 착륙장을 향해 하강이 시작된다. 착륙 지점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오르락내리락이 반복된다. 비행 내내 평온했고, ‘다이내믹 비행’ 때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이때 멀미를 했다. 배가 파도에 출렁일 때 멀미하는 것과 비슷하다. 착륙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아무 충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발을 하늘로 뻗으라는 지침만 잘 따르면 어느새 엉덩이가 땅에 닿아 있다. 첫 비행이 무사히 끝났다.
패러글라이딩은 사계절 할 수 있다. 바람이 안정적이라 비행 가능 일수가 가장 많은 계절은 가을이다. 여름은 더운 지상과 다르게 한번 올라가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선호하는 계절이다. 춥지만 설산의 장관을 눈에 담으려면 겨울을 추천한다. 봄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비행이 자주 취소되지만 포근한 봄바람에 실려 푸릇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하는 조종사들이 많다.
산 많고 물 좋은 양평의 관광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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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용문역 앞에 서는 용문천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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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천년시장엔 산나물을 파는 점포가 많다. |
양평은 시장도 유명하다. 날짜만 맞다면 전통 오일장을 둘러봐도 좋다. 양평에는 역을 따라 다섯 곳의 오일장이 선다. 서쪽에서부터 양수리전통시장(1·6일, 양수역), 양평물맑은시장(3·8일, 양평역), 용문천년시장(5·10일, 용문역), 지평시장(1·6일, 지평역), 양동쌍학시장(4·9일, 양동역)이 선다. 이 중 양평장과 용문장이 100개 이상의 노점이 나와 규모가 크다.
산이 유명한 양평답게 산나물과 버섯이 많은 게 양평 오일장의 특징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물을 소쿠리째 쌓아놓고 팔고, 지역에서 재배한 버섯은 크기와 육질이 남다르다. 용문장은 매년 4월 말 산나물 축제를 열기도 한다. 정겨운 장터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비행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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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두물머리(아래)와 세미원의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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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옆 경기 남양주시 물의정원. |
액티비티도 즐기고 장 구경도 했다면 가벼운 산책으로 양평 여행을 마무리해보자. 두 개의 강을 끼고 있는 양평은 수변 경관이 일품이다. 가장 유명한 두물머리, 두물머리와 배다리로 연결된 연꽃 정원 세미원, 군 경계를 넘어 북한강변에 있는 남양주 물의정원 모두 가볼 만하다. 다가올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한다.
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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