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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정부가 갱단 조종' 트럼프 주장, 미 정보기관은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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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요청으로 공개된 NIC 문서
"마두로 정부 TDA에 지시 근거 없다"
추방에 '적성국 국민법' 적용 어려워


지난달 26일 엘살바도르 테콜루카에 있는 테러리스트 수감 센터(CECOT). 미국에서 '트란 데 아라과(TDA)'로 분류돼 추방된 이민자들은 이곳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테콜루카=UPI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엘살바도르 테콜루카에 있는 테러리스트 수감 센터(CECOT). 미국에서 '트란 데 아라과(TDA)'로 분류돼 추방된 이민자들은 이곳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테콜루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세기에 만들어진 '적성국 국민법'을 내세워 이민자들을 대거 추방하고 있는 가운데, 미 행정부 직속 정보기관조차 이 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이민자 추방을 단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언론자유재단의 정보공개 요청에 따라 공개된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4월 7일자 문서 내용을 보도했다. NIC는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연방수사국(FBI) 등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산하 기관으로, 미국 정보기관들이 취합하는 정보를 토대로 전략 분석을 수행한다.

이 문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해 온 '베네수엘라 정부가 범죄 조직 트렌 데 아라과(TDA)를 통제하고 있다'는 정보가 "근거가 없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문서는 "베네수엘라의 관대한 환경 덕분에 TDA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맞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TDA에 지시를 내리거나 이들과 협력하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NIC가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베네수엘라 보안군이 수차례 TDA 조직원들을 체포해 사살한 사례로 미뤄보아 정부가 이 조직을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있고 △갱단 조직이 분산돼 있어 전체가 정부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서에는 '일부 정부 관리들이 TDA 조직원들을 미국으로 입국시켜 공공안전을 훼손하려 한다'는 FBI 일부 분석가들의 주장도 실렸으나, 나머지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에 공감하지 않았다. 특히 통신이나 자금 흐름 등 명백한 증거는 관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판단대로라면 외국인 이민자 추방에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방 대상 이민자들이 TDA 갱단 소속이고, 이들이 베네수엘라 정부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고 있으므로 '미국과 전쟁 중이거나 미국 영토를 침략하는 국가의 국민을 즉시 추방할 수 있다'는 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추방 대상 이민자들이 갱단 단원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적법 절차 없이 일부를 바로 비행기에 태워 엘살바도르 교도소로 이송하기도 했다.

앞서 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가 백악관으로부터 "기밀을 유출했다"며 형사소송을 당한 바 있다. NYT는 "간첩법을 적용하려면 미국에 해를 끼치거나 외국 적대 세력을 지원할 수 있는 국방 관련 정보를 고의로 무단 공개했어야 하는데, 이번에 정부가 스스로 해당 문서를 기밀 해제한 만큼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