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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공개 석상 선 장선우 감독 “이정현에 미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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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로그래머 상영으로 개봉 29년만에 상영관에서 다시 만난 ‘꽃잎’의 장선우 감독(오른쪽)과 배우 이정현(가운데). 김은형 기자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로그래머 상영으로 개봉 29년만에 상영관에서 다시 만난 ‘꽃잎’의 장선우 감독(오른쪽)과 배우 이정현(가운데). 김은형 기자


“30년만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제가 못할 짓 많이 시켰구나 후회와 반성을 했습니다. 이정현 배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2005년 촬영 중이던 영화가 중단되면서 영화계를 떠났던 장선우 감독이 20년만에 공식 무대에 섰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한국 대중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시했던 ‘꽃잎’(1996)의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기념해서다. 이번 영화제 스페셜 프로그래머인 이정현의 초대로 2일 밤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한 장선우 감독은 “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흐르기는 처음”이라며 “고통스러운 영화를 끝까지 함께 봐준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영화 ‘꽃잎’.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꽃잎’. 한겨레 자료사진

열다섯살 때 이 영화로 데뷔한 이정현은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라 개봉 때도 보기 힘들었는데 스크린에서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 대단한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10년 넘게 연기를 못하고 있을 때 ‘꽃잎’을 직접 디브이디로 구워서 선물로 주시며 다시 연기하라고 독려하시고, 봉준호 감독님은 ‘꽃잎’ 에 꼭 참여하고 싶어 조연출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다고 하시더라. 또 여기 오기 전에 연상호 감독님은 ‘꽃잎’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장선우 감독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달해달라고 당부하셨다”면서 ‘감독들의 감독’인 장선우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당시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이정현은 주요 신문에 난 오디션 공고를 본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첫날 규모가 큰 촬영이었는데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해서 감독님이 대본을 던지며 오늘 촬영접자고 하셔서 너무 무서웠다”면서 “방에 들어와 울면서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하다가 그냥 제가 미친 소녀처럼 살면서 캐릭터가 돼보자 결심했다”고 했다. 당시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이정현을 정말 실성한 소녀로 착각한 주변 식당 주인들이 안스러워하며 밥이라도 챙겨먹이려고 했던 건 알려진 후문이다.



장선우 감독은 “소녀가 기차 복도 칸의 유리창에서 자신의 환영을 보며 머리를 찧는 장면이 있는데 안 깨지는 유리라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연기에 집중했으면 유리가 현장에서 깨졌다”고 당시 에피소드를 떠올리자 이정현은 “그때 나도 깜짝 놀랐다. 그때 이마에 난 흉터가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고 회고했다.



장선우 감독은 ‘꽃잎’에 대해 “영화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고 했다. 대학때부터 탈춤, 마당극 등 문화운동을 하며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던 장 감독은 1980년 계엄포고 위반으로 두번째로 투옥되면서 수사를 받으며 “나가면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성공시대’(1988), ‘우묵배미의 사랑’(1990), ‘경마장 가는 길’(1991), ‘화엄경’(1993)등에서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를 모색하며 흥행과 비평적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1994년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큰 성공을 거두자 돈을 싸 들고 찾아온 제작자에게 장 감독은 “광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뜻밖에 선뜻 하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80년 광주를 영화로 만들고 나니 비로소 자유로워졌고, 이제는 어떤 영화도 편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나온 게 내가 본래 하고 싶었던 스타일인 ‘나쁜 영화’ 였다.”



영화 ‘꽃잎’.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꽃잎’. 한겨레 자료사진

‘꽃잎’은 당시 금남로 주변 상인들 만여 명이 가게 문을 닫고 직접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등 영화 제작에 도움을 준 것으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장선우 감독은 “광주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가 없었으면 완성이 불가능했던 작품”이라면서 “당시 출연했던 박철민 배우가 군중을 지휘하면서 효율적으로 찍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꽃잎’을 촬영했던 고 유영길 촬영감독을 떠올리면서 “유영길 감독은 원래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꽃잎’을 찍을 때는 너무 무겁고 예민해서 무척 힘들었다. CBS 영상기자 시절 80년 5월 광주를 처음으로 보도한 사람이니 트라우마가 오죽했겠나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20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관객은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내가 뭘 본거지 싶게 멍하고 충격적이다.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라고 감동을 전했다.



전주/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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