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총리가 광주비상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반발에 가로 막히자 \"저도 호남 사람\"이라며 참배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6·3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자신이 ‘호남 출신’임을 앞세우고 있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격하해 표현한 사실이 알려지자 5·18단체가 “중대한 역사왜곡 발언”이라며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공법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은 4일 공동성명을 내어 “5·18민주화운동은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숭고한 저항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둥”이라며 “(한 전 총리의 ‘광주 사태’ 지칭은) 5·18의 역사적 의미를 폄훼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 국가기관이 이미 확정한 ‘민주화운동’으로서의 공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3일 헌정회를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전날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가 광주 시민들의 거부로 무산되자 “저도 호남사람”이라며 외친 것과 관련해 설명했다. 그는 “5·18 광주 사태에 대한 충격과 아픔은 광주에 계신 분들이 가장 아팠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저도 호남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가슴이 아팠고, 여러분들과 같은 충격과 아픔을 충분히 느끼고 있던 사람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군 복무 중에 5·18 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사실을 전하면서 “광주 사태”라는 표현을 한 차례 더 사용했다.
‘광주 사태’는 전두환 신군부가 5·18을 광주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로 규정하며 쓴 표현으로 이후 진상규명 작업을 거쳐 공식적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돼 더는 쓰지 않는 표현이다. 그간 강경 보수 인사들이 5·18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소거하기 위해 ‘광주 사태’란 표현을 써 논란이 됐던 만큼, 한 전 총리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18단체는 “한 전 총리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고위 공직 경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에 오른 인물로, 헌정을 파괴한 내란세력의 통치 질서에 복무했던 인물”이라며 “그러한 이력이 있음에도 일말의 반성과 책임의식조차 없이 ‘광주 사태’라는 용어를 입에 올린 것은 5·18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고 했다.
이들은 “그가 진정 5·18의 정신을 이해하고자 했다면, 용어 하나부터 무겁게 다루었어야 한다”며 “5·18민주화운동을 ‘사태’로 칭한 그의 인식은 그 자체로 국정 최고책임자를 꿈꾸는 사람의 자격을 근본적으로 의심케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5·18단체는 한 전 총리에게 해당 발언에 대한 공개 사과와 진정성 있는 참회 및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5·18 정신을 훼손한 것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관련 행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총리가 광주비상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에게 가로막혀 있다. 연합뉴스 |
강기정 광주시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자꾸 광주 사태, 광주 사태라고 반복하는 것을 보며 참 부끄러움이 밀려온다”며 “지난 45년 겹겹이 쌓인 기억과 아픔의 첫 겹조차 모르는 ‘호남사람’이라서 더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열어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5·18민주화운동을 기린 것이 1997년”이라며 “평생을 정부에서 일한 사람이 이것을 몰랐다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 사태’ 지칭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시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무시”라며 “아직까지도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로 멸칭한다는 사람이 대체 무슨 이유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느냐”고 물었다.
한편, 대선 출마 뒤 ‘호남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는 한 전 총리의 행보를 두고도 이율배반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 전 총리는 캠프 대변인에 호남 출신인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를 임명하고, 5·18민주묘지 참배에 나섰지만 정작 공직자 재직 시절엔 출세를 위해 고향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심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가 보수 정권에서는 승진을 위해 전북 전주 출신임을 밝히지 않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비로소 이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화는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에 의해 전해졌는데, 한 전 총리는 “원적과 본적을 같이 쓰게 돼 있던 시기에 착오나 오해 등으로 혼동했을 수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민주당 인사들은 드물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논평을 내어 “한 전 총리가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1996년 12월25일 조선일보는 ‘서울 출신’으로 소개했다. 한 일간지는 가판에서 ‘전북 출신’이라 했지만 공보관실의 요청에 의해 ‘본적 서울’로 바꾸었다고 한다”며 “그런데 오비이락인지 디제이(DJ) 정부부터는 ‘전북 출신’으로 표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가에 떠돌던 일화에 따르면, 한 전 총리가 상공부(산업통상자원부 전신) 국장 시절 전북지사가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신은 전북 사람이 아니라면서 냉대했다고 한다”며 “정권에 따라 고향을 세탁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