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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대선 후보 김문수…노동운동가 출신 아스팔트 우파, 그가 걸어온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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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反유신·노동운동에 투신…서울대 2회 제적, 두 차례 구속도
90년대 ‘보수 정치인’ 변신 후 3선 국회의원·재선 경기도지사 역임
尹정부 국무위원 당시 ‘계엄 사과’ 거부한 前 고용노동부 장관
18대 대선 후 ‘야인 생활’ 전광훈 목사와 기독자유통일당 창당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2025.5.3 [공동취재] [연합]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2025.5.3 [공동취재] [연합]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3일 선출된 김문수(74)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정치권에서도 흔치 않은 ‘궤적의 변화’를 가진 인물이다.

김 후보는 1970∼1980년대를 이끈 ‘노동운동 1세대’지만 세기가 지난 2025년 현재 그에게는 ‘아스팔트 우파’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국민의힘 전신 정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 등을 지낸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야인’ 생활을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영입됐다. ‘12·3 비상계엄’ 정국을 거치며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판자촌 출신 서울대생…노동운동으로 수감되기도
1951년 9월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판자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1970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1971년 전국학생시위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됐고 대학 졸업장은 입학 후 24년이 지난 1994년에야 받았다.

제적 이후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근무했고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에 깊숙이 참여했다. 김 후보가 1980년대 대학생들의 ‘위장취업 노동운동’의 시초 격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1980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시절과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됐고, 그 과정에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적도 있다.

김 후보는 당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 전국적으로 상당한 존재감을 떨친 인물이기도 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운동권에서는 김 후보의 연설 필사본을 돌려봤다는 후문도 있다.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는 “동지로 지내던 시절의 김문수는 전설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노동운동가’→‘보수정치인’으로…3선 의원·재선 도지사 역임
김 후보의 인생은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달라진다. ‘노동운동가 김문수’가 ‘보수 정치인 김문수’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이재오·장기표 전 의원 등과 1990년 창당한 민중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1994년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의 권유로 전격 입당, 15대부터 17대까지 신한국당·한나라당 등 후신 보수정당을 거치며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된 후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며 행정가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당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획, 수도권 통합 요금제, 경기순환버스 등이 그의 대표 업적으로 언급된다.

2011년 119에 전화해 자신이 도지사임을 밝혔으나, 장난전화로 착각해 대응하지 않으려던 소방관들에게 집요하게 ‘관등성명’을 요구하고, 이후 징계성 인사 조처를 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했던 일은 아직도 회자되는 일 중 하나다.

18대 대선 후 10년 가까이 ‘야인생활’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기뻐하고 있다. 2025.5.3 [공동취재] [연합]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기뻐하고 있다. 2025.5.3 [공동취재] [연합]



정치가로, 행정가로 탄탄대로를 걸었던 김 후보에게 18대 대선을 기점으로 정치 인생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이번에는 김부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 서울 등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선거에 나섰다가 민주당에 ‘보수 텃밭’을 내어준 셈이다.

이를 계기로 당내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10년 가까이 사실상 야인으로 지내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열린 2018년 지방선거에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김 후보가 이즈음 ‘강성 보수’의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유튜브 개인 방송을 시작하며 진보 진영을 거칠게 비난한 것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총살감”이라는 말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9년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尹정부서 노동부 장관 맡아…“文은 김일성주의자” 발언도
일명 ‘아스팔트 보수’로 활동하던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정치 무대에 복귀한다.

정권 출범 첫해부터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사노위원장을 지냈다 작년 8월부터 노동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경사노위원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해 “김일성주의자”라고 한다든가,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파업을 두고 “노동자들이 손배소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해 당시 야권과 노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



그랬던 그는 ‘12·3 비상계엄’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2월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민주당 의원이 계엄 선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였지만 이를 홀로 거부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연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고, 이날 경선에서 56.53%의 득표율로 한동훈 후보를 누르고 당 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김 후보의 성향이 본선에서도 강점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를 포함한 보수 진영의 지지율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범보수 빅텐트’ 논의가 당에서 기대하는 시너지를 내줄지 향후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